기도 263

아침에,

by 강물처럼

"오라이, 출발!"

예전에 한참 사람들이 많았을 때, 그리고 다들 조금씩 가난했을 때, 버스 많이 탔습니다.


아침은 북새통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가득했으며 ´정비 공단´ 가는 버스는 꽉꽉 들어찼습니다. 창문으로 먼저 탄 친구에게 책가방을 던지는가 하면 어디선가 도시락 반찬통에서 김칫국이 흘러 시큼한 냄새가 버스 안에 자욱하게 번지던 날도 있었습니다. 동그란 버스 손잡이에도 서로 손이 겹쳤고 중학생 꼬마들은 그 와중에도 낄낄거리며 좋아했습니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내리면 된다고 떠드는 것이 어쩐지 밉상이었습니다. 아직 문도 다 닫지 않은 채 움직이는 버스는 시커먼 매연을 뿜었고 안내양 누나는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대차게 버스 몸통을 두들겨 신호를 보냈습니다.




"오라이, 출발!"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요. 빼곡하게 들어찬 버스에 올라탔을 때의 심란함과 안도감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잠시였지만 헝클어지지 않게 잘 건네주고 싶은 운명 같은 것도 거기 있었습니다. 우습겠지만 어린 내 속에서 ´운명 공동체´ 같은 말이 버스 안에 있으면 둥둥 떠다녔습니다. 어떤 때는 그대로 한 사람도 내리지 않고 멀리까지 가보는 상상을 했습니다. 다들 믿음직스러웠던가 봅니다. 운전수 아저씨도 안내양 누나도 앞사람, 옆 사람 모두.




항상 출발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지나는 곳에 안녕하시냐는 팻말 하나 걸어 놓고 싶은 날입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 마르코 6:8-9




늘 길을 잘 걷는 것은 아닙니다. 연휴가 끝나가는 아쉬움과 내일이면 바빠질 것을 아는 초조함을 달래볼 요량으로 어제 남은 햇살을 벗 삼아 혼자 함라산에 다녀왔습니다. 가볍게 다니는 길이라서 물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맹랑한 곳에서 현기증이 나기에 우스웠습니다. 내가 하고자 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닌 것을 기꺼이 이렇게 쉽게 가르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좋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라산을 한라산처럼 거니는 사람이 있고 한라산을 함라산보다 못하게 걷기도 하겠구나.


사는 것도 그렇겠구나.


마침 공선옥 작가가 예전에 쓴 ´행복한 만찬´에 나오는 한 구절이 라디오에서 흘렀습니다.


시큰해지더라고 하면 믿으실지요.


혼자 걷는 일은 다 방면으로 전문가가 되어 보는 것입니다. 심플한 스페셜리스트.


제가 주머니에 챙겨 온 그 말이 대충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곤 하는데요.


"찔레꽃 향기도 나지 않고 뻐꾸기 소리도 나지 않는 쌀밥이나 부추김치를 먹는 일은,


지렁이 울음소리 들리지 않는 죽순을 먹는 일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종의 단순 작업일 뿐"이라고요.




다 타셨습니까.


운전은 각자에게 맡기겠습니다.


이 버스 종점은 ´가고 싶은 데´입니다.


저는 오늘 하루 여기를 통통 두드리면서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오라이, 출발!"

작가의 이전글新年詩 /조병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