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게 됩니다.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낯선 이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맞습니까?
조심하고 상대하지 말고 모른 척하라고 일러줘야 합니까?
모두가 자랑하는 21세기 최첨단이라는 현주소가 바로 여기입니다.
미얀마에서도 날마다 공포와 두려움이, 결국 우크라이나에서도 불기둥이 솟았습니다.
지구는 심각한 사춘기를 앓고 있는 불량아가 된 듯합니다.
부모가 없는 것도 아니고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배를 곪을 만큼 가난한 것도 아닌데,
늘 싸움박질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죽기 싫다면서 콧물 눈물 흘리면서 흐느끼는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입니까.
커트를 할까, 파마를 할까.
짜파구리를 해 먹을까, 짜파게티로 끝낼까.
제주도에 갈까, 통영에 갈까.
새벽 미사가 나을까, 저녁 미사에 가는 게 좋을까.
매화가 좋아, 벚꽃이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런 거, 다 좋은 거로 물어오는 시간이 우리가 살고 싶은 시간 아닌가 싶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런 질문은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회복하려고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르코 10:14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도 아이들의 것입니다.
아이들이 계속 평화롭게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아이들이 눈에 밟히는 것이 부모 아니겠습니까.
정치는 백성을 자식처럼 살피는 것이 바탕 아니겠습니까.
불이 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됩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것들을 다 잃습니다.
전쟁이 그렇습니다. 전쟁은 더 오래 사람을 괴롭힙니다.
내 자식이 기억하고 그 자식의 자식이 이어갑니다.
여기에서 끝나는 전쟁은 없습니다.
유대와 팔레스타인은 2천 년도 넘게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도 70년이 넘도록 휴전 중입니다.
지독한 중2병입니다.
우리 부모는 그런 우리를 그래도 사랑하실까, 그것도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