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2, 27, 산이 일기

아빠가 쓰는,

by 강물처럼

TV에서 오은영 박사라고 정신과 의사 하는 분의 상담 코너에 인기 연예인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TV를 거의 보지 않는 나도 간혹 인터넷으로 그 기사를 접하면서 한 발 더 영상까지 클릭해서 보는 경우가 있다.

저 사람도 그랬어? 싶은 장면들이 거기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앉는 것을 안다. 그랬었다는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저 감정들을 찬찬히 그리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쓸쓸한 생각이 든다. 회복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나이가 들어버린 상처들은 모양이 예쁘지 않다. 겉모습처럼 사람을 우롱하는 것이 있을까. 사람을 갖고 논다. 저렇게 좋아 보이는 여자 연예인이 나처럼 우울했었구나 싶은 것이 되레 반갑지 않다. 다들 아빠들 때문에 혼란스러워 보인다. 차라리 아빠라는 직업을 따로 만들고 아빠라는 인연은 잠시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쉬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종교가 완고할수록 전쟁을 치러왔었다. 사랑과 자비, 희생도 쌓이다 보면 충돌했으며 그것도 무너지는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무너질 수 있는 것을 옆에서 높게 지어 올리는 상대는 결국 위협적이다. 무너뜨리고 싶어 진다. 평상심을 헤친다. 나의 번뇌는 너의 번성이다. 상대의 기도와 바람이 내 불행과 불안의 불씨가 된다. 차분하게 가라앉아 새털처럼 가벼운 종교는 없다. 사람들은 자식으로 태어나서 스스로 아빠가 된다. 마치 종교처럼 자란다. 그리고 하나의 종교가 된다. 교리와 율법은 완고하다. 내가 상처받았던 존재에게서 멀어져 내가 상처 주는 존재들 앞으로 돌아온다. 권토중래라면 희극이고 청출어람이라면 비극이 된다. 쉰이 넘은 아내는 애들 먹는 밥상을 집어던졌던 아버지를 영영 내려놓지 못할 듯싶다. 어제도 밥을 먹는 내 옆에서 그 옛날이야기로 밥이 잘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재주를 부렸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으면서 서러운 생각이 들었다.


산이가 누구 사귄다고 그랬잖냐며 말머리를 틀었다. 그랬지, 그래서 저번에 초콜릿도 하나 얻어먹었으니까. 공부도 잘한다면서. 나는 3월이 되면 산이에게 10배로 선물하라고도 했었는데, 왜.

그 집 엄마가 밥을 안 준대요. 지금 공부해야 하는데 무슨 남자 친구냐면서 밥을 안 준다고 헤어졌대요.

나는 안심이 됐다. 그리고 조금 불만스러웠다.

산이는 본 적도 없는 어른한테 영문도 모른 채 혼난 셈이다. 따끔하기만 할 뿐 아프지 않은 주사를 맞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효과도 없는 주사라면 맞을 이유도 없는데 공연히 아바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랬는지 당분간 모른 척하라는 얘기가 그럴듯하게 들렸다.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산이한테 뭐라고 그럴 것을 두 번쯤 참았다가 터뜨린다.

야, 지금 몇 신데 아직까지 휴대폰을 하냐?

어쩌면 산이는 여자 친구 일은 다 잊고 내가 저에게 던진 말들이 차가웠다고 떠들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산이가 어떤 스토리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으니까. 스토리는 잊힌다. 감정만 오롯이 남아 시대의 독립군이라도 된 듯 옹골차게 지켜낸다. 사람을 지켜낸다. 사상이 되기도 하면서 눈, 비를 맞고 그것을 갑옷처럼 휘감는다.


누군가 그때에도 TV에 나와 아빠 이야기를 하면서 한숨을 짓거든 너에게 떠오르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나도 여전히 우리 아빠가 많이 무겁다. 할 수 있다면 가벼워지고 싶은데 영 틀린 것 같다. 내가 너한테 건넬 수 있는 것이 그때에라도 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너는 나보다 좋은 사람이다. 그것으로 나는 네 신세를 지기로 하자.


- 이런 말 미안하지만 여기까지가 나, 이만큼이 나 아닌가 싶다. - 아빠는 그 친구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너는 괜찮냐? 잘 지내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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