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286

아침에,

by 강물처럼

92년 11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천도리, 입김이 길게 꼬리를 끄시면서 너울대는 날씨였습니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군인들의 주둔지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11월 7일, 토요일 생각지도 않았던 면회가 있었습니다.


전라도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하루가 다 걸렸던 시절이어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이등병 말호봉이었으니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꾀죄죄하고 어설프고 그러면서 눈은 좀 희번덕거렸을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군기 같은 것이 살아 있었고 또 병 상호 간에 폭행도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이게 웬 떡이냐, 아니 그보다 도대체 누가 나를 이런 진흙탕에서 오늘 꺼내 주는 거냐 싶었습니다.


졸병은 휴일이 더 피곤하니까요.




나를 찾아와 준 사람들 - 재원이 하고 만모.


둘 다 아직 군대를 가지 않았던 탓에 잔뜩 졸아있는 저를 보고 웃기도 많이 웃었습니다.


어중간하게 ´다, 까, 오´로 나오는 말투 하며 아무렇게나 깎은 머리, 그리고 국방색 털모자며 귀마개, 거기에 노란색 깔깔이를 보고 또 순식간에 군화 끈을 묶고 푸는 것들 하나하나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만모는 그 11월이 끝나기 전에 의정부에 있는 306 보충대로 입대했고 재원이도 그 이듬해 군인이 되었습니다.


간간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때 나를 면회 오던 날의 풍경을 적어 보내곤 했습니다.


불쌍했다고, 그러면서 저것이 자기를 모습이겠거니 하면서 착잡하기도 했었다고.


물론 그 면회 이후로도 군 생활이 편해진 것은 1도 없었습니다.


완벽하게(?) 꼬인 군번 탓에 병장이 되어서도 밤중에 불려 다니고 그때마다 서러운 생각이 몰아쳤습니다.


말하지 않았지만 만모하고 재원이는 나 같이 적응하지 못하고 지내는 군인에게 힘이 되어줬습니다.


이등병 때에도 그랬고 그들이 이등병, 일등병, 상병, 그렇게 계급이 올라갈 때에도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 거, 나보다 힘들 텐데 싶은 그런 얄팍한 동정 같은 것을 의지 삼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셋이서, 김치찌개라도 하나 시켜놓고 소주를 마셔보고 싶어 집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지리산을 좋아하는 편일 겁니다.


좋다는 표현을 잘 못하는 저는 혼자일 때 찾아갑니다. 내가 혼자서 누군가를 찾아가면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월출산도 통영에 있는 언덕도 변산반도에도 그리고 나그네가 되는 길을 찾아갑니다.


노고단에서 달궁 계곡으로 내려오는 길에 재원이를 뿌렸습니다.


벌써 23년 전 일입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생각난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가끔 차를 멈춥니다.




만모는 요즘 무엇인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아버지 산소에도 찾아뵌 것을 보면 그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생긴 듯합니다.


더 이상 소주를 마시지 못하는 저는 대신 커피를 권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살아서 찾아가지는 못하고 매일 보내는 이 편지에 같이 넣었습니다.


이야기라도 들어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내가 가장 초라했을 때 나에게 힘이 되었던 사람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잠을 편안하게 자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몸도 몸이지만 오래전 일들이 가슴을 쳐대는 때가 있습니다.


한순간 후회와 격정으로 잠은 멀찍이 달아나고 두근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둠 속에 앉아 있습니다.


잘못한 것은 이렇게 돌아옵니다.


슬픔을 이렇게 복기復棋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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