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투표

아빠가 쓰는,

by 강물처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러시아 군대의 침략이다. 침략이란 말을 방송에서 사용했다고 자국 방송국을 폐쇄했다고 들었다. 역사를 얕잡아 보고 있거나 애써서 두려움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어리석은 일이다. 파랑과 노랑은 하늘과 땅 아니겠는가. 우크라이나의 하늘과 땅이 미사일과 포격, 총성으로 찢겼다. 사람들이 맞서고 있다. 살기 위해서 떠나고 살기 위해서 남는 사람들, 살리려고 떠나보내고 살리려고 싸움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아이들이 먼저 죽었다. 죽은 아이의 부모들이 원망과 비탄에 빠져 허우적댄다. 건물이 무너지고 불에 타고 그리고 총탄 자국들.


러시아 젊은 군인들의 부모들도 아들을 찾아 헤맨다. 애가 탄다. 전쟁이 났는지도 모르고 전쟁터에 끌려간 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다가 포로가 된 아들의 음성을 듣는다. 그 하늘도 어두울 것이다. 피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오래 잊히지 않고 사람을 슬프게 짓누를 것을 푸틴이란 사람이 과연 책임질 수 있을까.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무엇이 그로 하여 전쟁을 일으키게 했는가.

미국과 유럽 연합은 이 전쟁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그들이 공수하는 무기에는 평화가 담겼는가. 평화를 조롱하는 몇몇 사람들의 꾐에 빠져 우리는 피바다를 이룬다. 멀쩡한 내 아들이 총을 들고 죽으러 간다. 딸들이 낮은 포복으로 땅 위를 기어 총을 쏜다. 나보다 나이 먹은 할머니가 어째서 사격을 해야 하나. 젊은 병사를 향해서.


코로나 환자도 만연하고 봄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 사전 투표를 했다. 첫날에 했다.

아들 산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어떤 투표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그전에 나는 냉소적이었다. 정치에도 정치인에게도 전쟁이 일어난대도 그깟 일에 나까지 들떠서 떠들어댈까 싶었다. 잘난 너희들끼리 다 해 먹어도 상관없다 싶었다. 피차 서로 갈 길이 다른 걸 어쩌겠냐며 무지했었다. 알려고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싶은 것은 없다.


그런데 투표는 해야겠더라.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나라에 도둑들이 얼마나 득실거리는지 몰라도 그리고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더라도 투표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이 내 차례 아니냐. 내가 맡아 놓은 구간을 잘 지키고 있지 않으면 누가 여길 빠져나가고 샛길로 새어버렸는지 어떻게 증언하겠느냐. 아빠는 그때 뭐 했냐고 네가 물으면 나는 뭐라고 그러느냐.

휴대폰 적당히 하고 공부하라는 말도, 늦게까지 깨어있지 말고 일찍 잠 자라는 말도, 투표에 담았다. 대통령 하나 뽑으면서 그런 것들까지 다 책임지라고 그러지는 않는다. 나도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니 우리, 자기 자리에서 잘해보자고, 그래야 쓸데없는 전쟁 걱정은 하지 않겠느냐고.


기차 창으로 큼지막한 손을 가져다 대면서 폴란드로 피난 가는 어린 자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젊은 아빠는 오늘 어느 전선에서 총을 들고 있을까. 얼마나 지나면 하늘을 파랗고 땅은 노랗게 물결칠 수 있을까. 그때에는 지금을 아슬아슬했다고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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