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서 두 개가 열렸습니다.
그 두 개는 형제여도 좋고 자매여도 좋으며 흔한 남매여도 괜찮습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얀마에서는 군부의 탄압과 거기에 항쟁하는 시민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과 폭정, 거기에 희생당하고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평화.
어느 때라고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살아가는 일은 그 자체로 용기였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 순전히 우연이었다면 그게 꼭 나였을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우연으로만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우연히 살다가 떠났다는 말에는 내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 삶에 일어나는 일에 - 어쩔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 나는 기도하고 울고 참으면서 또 내리 걷습니다.
흘러가면서 기도하는 일은 용기가 맡은 일입니다.
기도하면서 흘러가는 일은 용서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흐르더라도 그냥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살면서, 어디까지나 살아가면서 저만치 흘러갑니다.
내가 살아온 만큼 세상이 여기를 지나가 있습니다.
내 용기와 용서로 세상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기꺼이 용기를 내야 합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가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마태오 6:12
그래서 용서하기로 합니다.
평화가 용기와 용서로 그 모양을 지탱합니다.
땅 아래에서 물을 빨아올리고 공중을 향해 꽃을 피웁니다.
용기와 용서야말로 뿌리가 되고 줄기가 되어 평화를 이루는 작업 아닌가 싶습니다.
오미크론 환자도 많아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계절이 몸을 바꾸는 시절에는 모두가 몸살을 앓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이인삼각으로 걸어가는 것도 좋습니다.
그랬다면 어제 죽은 아이들이 오늘 얼마나 환하게 웃었을까 싶습니다.
웃음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없고 세상에는 평화가 어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