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10

아침에,

by 강물처럼

개나리는 한 데 어울려 뭉치로 피어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가느다란 것들은 함께 모여서 큰 그림을 그립니다. 실낱같은 희망이 우연처럼 겹치면서 사람이 다시 살아갑니다. 도로를 달리다 길 양쪽에 피어있는 노란색 꽃들을 보면 내가 다닌 적 없던 유치원 시절이 생각나는 것이 신기하면서 애틋합니다. 어제는 개나리를 봤습니다.

호수에 들어섰습니다.


두 시간짜리 동그라미를 그리는 작업입니다.


작업이라고 쓴 것은 시간을 아무렇게 보내고 싶지 않은 뜻입니다. 기분 좋은 작업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어제 본 것들만 적어 보겠습니다.


고귀한 목련, 애틋한 사랑 산수유, Cherry blossom 벚꽃, 기품 있는 매화, 버드나무에도 연두색이 올랐습니다. 능수버들이란 더 정겨운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늘 수선화가 좋습니다.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별로인데 수선 水仙이란 이름은 꽤 마음에 듭니다. 봄꽃 가운데를 그것도 오전 신선한 기운 속이어서 그랬는지 나중에 손자가 생기면 이름을 어떻게 짓겠냐며 농담도 나눴습니다. 아내와 저는 한참 뒤에나 있을 일을 처음으로 궁금해했습니다. 사는 일이 파란 호수 위로 흐르는 주름살 같고 햇살 같으며 물결 같아서 잠시 너그러운 사람처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떠나지 못한 오리들이 몇 마리 남아있었습니다. 사람 이름은 더 짓지 않는 것이 보기 좋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그 이름에 만족합니다. 이 : 기쁠 怡.




내가 몰라서 그렇지, 어제 본 꽃들이 어디 그뿐일까 싶습니다.




6학년 주하의 과제는 봄을 주제로 하는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돌아다닐 생각에 그저 즐거워 보였습니다. 봄에는 벚꽃이지, 그러는 것이 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말을 꺼냈습니다.


주하야, 내가 끝내주는 아이디어 하나 있는데?


뭔데요, 말 끝이 흐물흐물한 것이 별로 관심 없다는 투였습니다.


다른 애들도 다 꽃 사진을 찍을 거 아냐, 그렇지?


너는 다른 사진을 찍어!


이제 조금 관심을 보이는 눈빛이 되었습니다.


너는 ** 사진을 찍어, 그러고 나서 왜 이 사진을 찍었냐고 선생님이 물어보면, 다른 말 하지 말고 딱 한마디만 하는 거야.


´나의 봄´




6학년이 듣기에 그만한 것이 없었던지, 아니면 주하가 순수해서 그랬던지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습니다.


요즘 주하는 **를 사귀기 시작했거든요.




내가 어제 본 꽃들, 미처 보고서도 다 알지 못한 꽃들이 다 봄꽃이었습니다.


꽃이 호수에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긴 영어 지문을 갖고 한숨을 쉬던 고등학생들도 돌이켜보면 꽃 같습니다.


시작하는 사람들, 연애하는 사람들, 공부하는 사람들도 다 나들이에 나선 모습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12




세상은 봄입니다.


나의 봄인 것을 내가 모르면 슬픈 일입니다.


봄은 슬퍼도 말이 없는 처녀 같아서 그 둘 사이를 지나는 나그네는 안타까워합니다.


어떻게 둘을 이어 줄 수가 없을지, 골몰해지는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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