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11

아침에,

by 강물처럼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 요한 8:23

날이 갈수록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봄빛이 고운 줄 알고 손을 내어 빛을 만져보는 장면이 저에게 있습니다.


꼭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흔들거립니다. 밝고 따뜻한 볕 아래 꽃이 열고 그 꽃이 세상이 됩니다.


지금은 봄, 들썩거리는 시간, 살살 간지럽힙니다.


꽃이 피었습니다.




봄에는 생몰연도를 하나 적어봅니다.


내 것을 적었다가 4월의 푸르름을 적었다가, 꽃이 지고 나면 그뿐 내 한 해도 거기 맡겨 둡니다.


서명을 잊지 않고 자유라는 두 글자를 꼭 눌러 찍습니다. 내 낙관 樂觀이 그대로 낙관 落款이 됩니다.


자유를 하나 건네겠습니다.




미우라 아야코를 기억하실지, 빙점 氷點 그러면 금방 알아보실 겁니다.


그분의 수필 ´살며 생각하며´에 밑줄 그어가며 4월에 들어섰습니다. 앞뒤를 자르고 - 참, 저 봄맞이 파마했습니다. - 한 토막 전해드릴까 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소설가입니다. 살면서 두 가지를 분명히 했던 사람입니다. 미우라의 아내, 그리고 크리스천이라는 것. 그녀가 들려줍니다.




"어느 교회에서나 십자가를 세우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원래 사형대입니다. 사형대를 좋아할 사람은 없겠으나 사람을 죽이는 사형대가 지금은 구원의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사람은 일단 한 번 도둑질을 하거나 누구를 배신하면 그 신용을 회복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바꾸는 데는 몇십 년 동안이나 고역을 치러야 합니다. 2000년 전에 십자가를 본 사람들은 무서워서 떨었을 것입니다. 사형대니까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십자가를 보고서 무서워 떠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십자가는 하느님의 사랑의 표시, 구원의 표시가 된 것입니다. 이런 기적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4월 5일은 4월이라는 바다에 4월은 봄이라는 대지에 봄은 1년 사계절이라는 시간에서 자유롭습니다. 그 1년이 다른 더 큰 시간을 채우는 초침이 됩니다. 시시각각 우리를 채우고 우리는 세상을 채우고 세상은 더 너른 공간을 채워서 자유를 새깁니다. 자유는 그렇게 자꾸 만들어지고 계속 커가고 그리고 자유에 닿습니다.




진리가 자유롭게 한다는 말, 그 시작입니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요한 8:24




누구나 죽습니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그 말이 맞습니다.


꽃이 떨어져서 흩날리는 날도 있습니다. 따뜻한 것은 그렇게 제 몸을 바꿔서 사람을 흔들어 줍니다.


그래서 ´어떻게´라는 말은 늘 우리의 숙제가 됩니다.


살아있는 것들의 공통 과제입니다.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도 써보라고 하실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름´ 먼저 적어 놓고 할 말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름만 적다가 종이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 적은 이름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 이름들이 나를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때에도 ´푸틴´이라고 적는다면 지적받을 것입니다. 블라인드 면접은 그런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사형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에 앉았습니다.


저는....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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