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수요일입니다.
봄이 되면 교회는 사순 시기가 시작됩니다. 재의 수요일부터 40일,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부활을 기념하는 하나의 절기입니다. 사순절에는 금식과 기도, 선행이 특별히 더 요구됩니다.
기저귀를 찬 어린 딸의 등에는 엄마가 적어 놓은 이름과 생년월일, 연락처 등이 쓰여있습니다.
자신이 사망할 경우에 딸아이가 가족과 연락이 닿을 수 있도록.
지난 2월 22일 이후, 우크라이나는 매일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을 당하며 죽음을 각오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40일이 더 지났습니다.
모현동 학원가 앞에서 딸아이를 태우는데 차 앞으로 불쑥 어머니가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서둘러 건너는 모습이 위태로웠습니다.
어머니는 뇌경색 환자여서 거동이 불편하시고 혼자 돌아다닐 수 없는 형편입니다.
부리나케 차를 세우고 어머니를 쫓았습니다.
처음으로 사람을 잘못 알아봤습니다. 다시 돌아봐도 저희 어머니와 똑같았습니다.
엄마가 갑자기 좋아졌나, 그럴 리가 없는데...
그 순간에 얼마나 두근거렸던지요.
딸아이가 우리 할머니 아니냐고 몇 번을 묻는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대답도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잃는 것, 슬픈 일입니다.
어머니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자신도 마모되는 것을 압니다.
월요일 아침에는 예정에 없던 장례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장례 미사는 언제나 갑자기 생깁니다.
별거 아닌 내 일상에도 루틴이란 것이 있어서 그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현기증이 일어납니다.
현기증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친구이면서 친구 아내인 친구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너는 아무런 티가 나지 않아서 좋겠다. 겉에 어디 하나 없는 것은 볼 때마다 속상하고 서로 미안하다 아이가.
그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 요한 8:42
내 삶에서 내가 기념하고 묵상해야 할 나의 사순절은 그때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머물지 않을 수는 없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가능한 줄였습니다. 미사에 복사를 서면서도 좀처럼 집중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다음 동작을 잊고 가만 서 있으면 어쩌나 싶은 상상을 제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합니다. 아무런 절차가 생각나지 않는데 장례 미사에 복사를 섰습니다. 역시 허둥거렸습니다.
문장이 앉아 있는 대로 나오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30분을 기다리다 쓰기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처음을 떠올리는 일은 항상 저를 가르칩니다. 처음에 어떻게 썼는지 다 잊었습니다. 다만 금방 지쳤다는 거, 그래서 다시 쿨쿨 잠이 들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길게 쓸 자신이 없습니다. 그거 하나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만큼 배부른 것처럼 집중되지 않습니다. 막무가내로 흐려집니다. 그래서 되려 고마운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중간고사 준비로 바쁜 시즌입니다. 익산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 시험 범위는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렇게 쉽게 식어버리는 힘으로 하나씩 해결해 가고 있습니다. 부담스럽지만 아직은 해결 가능한 것이 행복하다고 여깁니다. 흔들리면서 꽃은 핀다고 그러니까요. 사순은 실천하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의 길도 따라나서고 금식도 하고 판공성사도 봅니다. 전쟁은 어떻게 될지요. 전쟁은 누가 막아야 하는지요.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요한 8:40-41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유다 이스카리옷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함께 묵상합니다.
1주일 남은 사순 시기를 날이 밝아오는 순서처럼 보내야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유다 이스카리옷과 시몬 베드로에게 전합니다.
밝은 곳으로 오세요. 이쪽으로, 여기가 환하고 즐겁습니다.
봄에는 사순절, 사순절에는 꽃이 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