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 치지!"
"아냐, 내가 잘 쳐."
"나, 옛날에 잘 쳤다."
저희 집에서만 들을 수 있는 대화의 한 토막일 것입니다.
복사 服事라고 하면 신부님 옆에서 시중을 드는 역할을 일컫는데 크게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이런저런 미사 절차는 곧 익숙해집니다. 미사의 모든 과정이 절차대로 진행되어 가는 가운데 하나, 결과가 어떻게 날지 미지수처럼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사 때 무릎을 꿇고 총 6번 복사 服事는 종을 울립니다.
횟수를 잊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경력이 붙으면 초보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의 절차를 따질 줄 알게 됩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훈련은 봄 속의 봄, 내 안의 나, 세상 가운데 세상을 마주하게 하는 지고지순한 선물입니다.
산이와 강이, 저는 ´종소리´에 대해서 순도 높게 따집니다.
그것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합리나 증명 가능한 문제 풀이가 되지 못하는데도 사뭇 진지하게 사람의 마음을 달구는 데가 있습니다.
어제 저는 종소리가 좋았더라고 어느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
요전 날 강이 종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더라는 수녀님 말씀을 방금 듣고 나왔는데 그처럼 칭찬해 주시니 우연치고는 달콤했습니다.
산이의 종소리는 안정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식구들은 은근히 산이가 실력자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기 위치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면서 그것이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따져보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나 마음의 정도를 키재기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또 하나 발견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종소리는 결국 그릇에 담긴다.
사람은 소리가 담기는 그릇이다.
어떤 소리는 말보다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말이 더 전하지 못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바람 같은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이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 우리가 ´인연´ 같아져서 좋아 보입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는가?> 요한 7:41
그렇게 마음이 순해지는 순간이 우리들 곁에 찾아올 때 넌지시 감사하는 마음을 고개를 듭니다.
배우지 못한 우리 할머니가, 그리고 그 아들이, 그리고 내 어머니가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덕분에 저는 우리 아이들하고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소리를 보고 들리지 않는 울림을 층층이 나눠서 들어보는 이야기를 하니까요.
땅에서 난 꽃들이 그와 같이 쫑긋쫑긋하며 바다에서 난 파도가 그처럼 싱싱할 것입니다.
재미있었으면 합니다.
돌돌돌 물이 돌아서 흐르는 소리가 나면 인생도 하루도 기도도 그것이 듣기 좋아서 웃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종소리를 듣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몰랐던 촛불 켜는 일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는 나이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사를 하고 나면 마치 고백 성사를 받고 일어서는 기분이 됩니다.
아이들 키가 2센티미터 더 자라면 그때 촛불은 어때? 그러면서 물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