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08

아침에,

by 강물처럼

지금 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교리교사´ 그리고 ´아쉽다´ 그 두 가지입니다.

잠에서 막 깨어나려고 했을 때 스쳐간 얼굴들이 몇 있었습니다.


아마 꿈을 꾸고 있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그것이 학교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를 키운 8할은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이런 말 무겁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기도 하는데 ´만우절´에 기대어 조금 ´웃프게´ 나가보겠습니다.


포인트는 여기가 아니라 저기이니까요.


어렸을 적에 집이든 학교든 밝은 색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그 시절 저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누군가 그랬다면 우중충한 색을 집어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마음을 찌르는 색이었을 겁니다. 수치심 아래에는 저항이나 분노가 졸졸 흐릅니다. 물론 저는 그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환한 것이 불편했고 환하게 웃는 것이 어색해서 무표정했습니다. 표정이 하나로 고정되면 감정이 석화 石化 됩니다. 화석이 되는 것 말입니다. 말이 줄어들고 어쩌다 말을 하려고 하면 더듬거리는 것입니다. 우물쭈물 그러고 있으면 바보가 된 기분이 듭니다. 바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이름이 불리는 것을 피했습니다. 가능한 숨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다 몰랐어도 결국 좋았던 것은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성 중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저를 봅니다. 저를 쫓는 교리교사가 있습니다.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었고 안경을 썼고 귀밑에 닿는 머리를 한 대학생 선생님이 있습니다. 얼마나 실컷 웃었던지 하늘이 빙 돌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전에도 그 뒤에도 그렇게 웃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성당 안에 모였습니다. 치명자산이 보이고 오르간이 놓여있는 쪽이었습니다. 빛이 길게 다리를 뻗어 거기에서 뭐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처럼 친절했습니다. 성당은 넓었고 우리 뒤로는 은은한 빛이, 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 연습을 했습니다. 북 치는 소년이었을까요, 저 들 밖에 한 밤중에 같은 노래였을까요. 그때도 알았습니다. 거기 앉아서 지금을 알았던 거 같습니다. 언젠가 이 순간이 그리울 것을.




그래서 제가 다닌 주일학교는 학교가 아니었습니다.


학교가 사람을 돕다니요. 학교에 가고 싶어서 토요일을 기다리다니요. 선생님이 예뻐 보이다니요.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요한 7:25




웃는 여자만 예쁜 것이 아니라 웃는 사람은 모두 좋아 보입니다.


사람이 좋아 보이는 웃음, 그 웃음을 찾습니다.




아쉬웠어요, 뒷자리에 앉은 꼬마 아이가 하는 말이 좋았습니다.


그것은 모자란다는 말이 아니었구나. 더 보고 싶다는 뜻이었구나.


아쉽다는 것을 내가 받은 점수처럼 여겼습니다.


2% 아쉬워 그러면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떨어지다니, 후회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그 말이야말로 사람 냄새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운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쉬운 것들이 많습니다.


기분 나빴던 것이나 슬펐던 것, 아니면 앞에서 말했듯이 부끄러웠던 것들도 아쉬움으로 치장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분위기가 한결 고급스러울 것 같습니다.


타닥타닥 나무 타는 소리와 냄새가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있으면 옛날이 노래처럼 흐를지도 모릅니다.


아쉬웠던 것들에 웃음을 보태면서.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 요한 7:27




주머니에 있던 두 가지로 만든 요리는 어떠신지요.


단출하지만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구름빵 같은 것입니다.


모쪼록 편안한 시간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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