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꼬마 아이들이 만우절에 누가 고백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저희끼리 깔깔거립니다.
하루가 지나는 것만큼 고마운 것도 없더라는 눈빛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3월이 막 문을 열려할 때 친구가 그랬습니다.
이번 달 자기 구역 기도 모임에 기도를 맡았는데 대신 아침 묵상을 보내도 괜찮겠냐고 물었습니다.
고마운 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때하고 다르게 3월은 그 말이 줄곧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잘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소박하지만 3월 31일이라고 쓰는 이 느낌이 좋습니다.
언제든 열이 나고 몸이 아플 수 있는 판국에 다행히 멈추지 않고 3월을 마무리합니다.
제가 모르는 그리고 저를 모르고 아침 묵상을 받아주셨던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사람이 믿는 ´종교´는 하나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길이 놓여있고 사람은 그 길들을 가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길을 가는 것이 합당하지 않습니까. 그거야말로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자연스러운 것을 두고 다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 봄이냐고 따지는 사람을 어떡하겠습니까.
신기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크게 보면 크게 볼수록 하나가 됩니다. 너와 나의 경계가 희미해졌다가 사라집니다.
봉황의 뜻을 참새가 읽지 못하는 경우에 다다릅니다. 그것이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커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늘 닮은 그것은 하늘이어야 합니다.
또한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작아질 대로 작아지면 어떤 그물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때 혼자서 갈 수 있고 그것을 자유라고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 닮은 그것은 작아져야 합니다.
내가 크고 하늘이 작아지면 걸릴 것은 다 걸리고 날아갈 곳을 잃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전쟁밖에 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 요한 5:41-42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 사이의 C이다. ´라는 명언을 남겼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태어난 날 Birth부터 죽는 날 Death까지 좋든 싫든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 Choice 해야만 한다.
한 번쯤 들어본 말입니다.
선택은 - 선택이란 말 앞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 탄생과 죽음에서 벗어나 있는 반짝이는 말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를 나타내는 깃발 같은 것입니다. 선택을 두고 누구든지 골똘해집니다. 지혜롭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택이 아니라 찬스 Chance라는 말로 대신 읽습니다. 내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연 같은 것이고 동시에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선택이 문명의 것이라면 찬스는 자연의 것입니다. 선택이 서치라이트 같다면 찬스는 달빛 같습니다. 사르트르 선생님께서 콧방귀를 뀌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때는 ´서치라이트´ 같은 것은 없었다며 돌아앉을 것만 같습니다.
목요일이고 아침입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