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오늘 돌아가십니다.
죽는다고 하면 그것으로 사라지는 그래서 끝이며 없는, Pass away가 됩니다.
away는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이며 결국 없어지는 nothing 바로 직전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죽음도 각각 경험합니다.
´당사자 當事者´
누구의 죽음을 그 당사자와 같이 겪겠습니까.
그런 슬픔을 들은 적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배가 고프더라. 밥 먹을 때가 되니까 밥이 먹히더라. ´
죽음은 무엇입니까.
존재는 과거나 현재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까.
어디까지가 우리가 인정하는 존재의 범위입니까.
그것은 모현동이나 송학동과 같은 그런 동네가 맞습니까. 좀 더 써서 우리나라 정도 되는 사이즈면 되겠습니까.
내가 먹고 움직이며 살던 곳이 여기지, 내 존재의 거주지는 결코 여기로 한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 ´나´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래서 있으면서도 없을 것이 ´저´가 됩니다.
그 노래, 슬픈 노래 그렇지만 예쁜 노래 하나 있습니다.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When you awaken in the morning ´ 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거기에 나는 없습니다.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천 개의 바람입니다.
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이 빛나는 눈이 되고
나는 가을 들녘을 비추는 햇빛입니다.
나는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아침이면 고요 속 잠에서 깰 때 나는 빠르게 상승합니다.
허공을 가르며 날고 있는 새들을 봅니다.
나는 밤하늘에서 조용히 빛나는 별입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에 없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돌아간다´는 말이 더 이상 감격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돌아간다니요, 그럴 수 있다니요. 그것은 다시 볼 수 있는, 그래서 더 잘 볼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는 공간 - 돌아가는 길 - 여간한 ´빽´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렇게까지 저를.
짓궂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혹시라도 지나는 길에 어떤 무덤 앞에 ´장미꽃´이 놓여 있거든 제가 그런 줄 아세요.
색이 더 진한 장미를 고릅니다.
나름 분위기 있게 전하고 싶어서 날도 고릅니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쯤 바람이 살살 부는 날이면 그럴듯합니다.
말도 한마디만 넌지시 건넵니다.
´생각나서´
가능한 못 갖춘 마디로 끝냅니다. 그 뒤는 그가 완성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어제가 우연처럼 헨델 선생님이 돌아가셨던 날이었더군요.
*울게 하소서.
오늘은 울게 하소서.
아멘
* 헨델의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