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20

아침에,

by 강물처럼

예수님은 오늘 돌아가십니다.

죽는다고 하면 그것으로 사라지는 그래서 끝이며 없는, Pass away가 됩니다.


away는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이며 결국 없어지는 nothing 바로 직전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죽음도 각각 경험합니다.


´당사자 當事者´


누구의 죽음을 그 당사자와 같이 겪겠습니까.


그런 슬픔을 들은 적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배가 고프더라. 밥 먹을 때가 되니까 밥이 먹히더라. ´




죽음은 무엇입니까.




존재는 과거나 현재로 표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까.


어디까지가 우리가 인정하는 존재의 범위입니까.


그것은 모현동이나 송학동과 같은 그런 동네가 맞습니까. 좀 더 써서 우리나라 정도 되는 사이즈면 되겠습니까.


내가 먹고 움직이며 살던 곳이 여기지, 내 존재의 거주지는 결코 여기로 한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있으면서도 없는 것이 ´나´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그래서 있으면서도 없을 것이 ´저´가 됩니다.




그 노래, 슬픈 노래 그렇지만 예쁜 노래 하나 있습니다.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light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When you awaken in the morning ´ 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거기에 나는 없습니다.


잠들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천 개의 바람입니다.


나는 다이아몬드와 같이 빛나는 눈이 되고


나는 가을 들녘을 비추는 햇빛입니다.


나는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입니다.


아침이면 고요 속 잠에서 깰 때 나는 빠르게 상승합니다.


허공을 가르며 날고 있는 새들을 봅니다.




나는 밤하늘에서 조용히 빛나는 별입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에 없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돌아간다´는 말이 더 이상 감격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돌아간다니요, 그럴 수 있다니요. 그것은 다시 볼 수 있는, 그래서 더 잘 볼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그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는 공간 - 돌아가는 길 - 여간한 ´빽´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렇게까지 저를.




짓궂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혹시라도 지나는 길에 어떤 무덤 앞에 ´장미꽃´이 놓여 있거든 제가 그런 줄 아세요.


색이 더 진한 장미를 고릅니다.


나름 분위기 있게 전하고 싶어서 날도 고릅니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쯤 바람이 살살 부는 날이면 그럴듯합니다.


말도 한마디만 넌지시 건넵니다.


´생각나서´


가능한 못 갖춘 마디로 끝냅니다. 그 뒤는 그가 완성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


"다 이루어졌다.">




어제가 우연처럼 헨델 선생님이 돌아가셨던 날이었더군요.


*울게 하소서.


오늘은 울게 하소서.






아멘




* 헨델의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작가의 이전글기도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