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416, ´복음´ 없는 날
¶성토요일에 교회는 주님의 무덤 옆에 머물러 주님의 수난과 죽음,
저승에 가심을 묵상한다. 그리고 기도와 단식을 하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린다.
오늘 아침은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글, 3편을 전하겠습니다.
2편은 우리 시대의 안내를 맡은 사람들의 글이며 나머지 한 편은 로마서의 한 대목입니다.
길에서 주운 돌로 담을 지은 것이 저였다면 다음 이어지는 글에서는 체계적이고 바르게 쌓아가는 성채를 목격하실 것입니다.
먼저 중앙일보 종교 담당 기자 백성호의 『예수를 만나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00만 독자를 감동시킨 우문현답의 예루살렘 기행 완결편이라는 안내 문구가 곁들여 있습니다.
좋은 시간 되셨으면 합니다.
- 이어서 예수는 말했다. "진리에 속하는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진리에 속한 이는 누구이고, 속하지 않은 이는 누구일까? 성경을 읽다 보면 간혹 답답할 때가 있다. 무언가 한 발짝 더 들어갈 필요를 느낄 때다. 예수가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가 궁금해질 때다. 그럴 때면 나는 종종 묵상을 했다. 그리스어 성경을 펼치기도 했다. 성경은 처음에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번역 과정을 덜 거친 예수의 말이 거기 어딘가 남아 있다. ´진리에 속한 이´는 그리스어로 ´pas ho onek tes aletheias´이다. 영어로는 ´every the one-being out of the truth´, ´진리로부터 나온 모든 존재들´이다.
요한 복음서의 첫 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은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복음서 1장 3절) 모든 존재는 진리로부터 나왔다. 진리에서 나오지 않은 존재는 없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는 신의 속성으로부터 나왔다. 신의 속성에서 나오지 않은 존재는 없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실은 ´진리에 속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빌라도는 몰랐다. 예수를 끌고 온 유대인들도 몰랐다. 그들이 진리에 속해 있음을 몰랐다. 그들은 왜 몰랐을까. 이유가 있다. 그들이 영원한 왕국에 속해 있으면서도 사라지는 왕국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308p.
이쯤에서 음악 한 곡 들으면 근사할 것 같은데 어쩌죠, 같이 들을 수 있는 방법이...
If I could, Pat Metheny Group의 연주가 어떨까 싶습니다.
두 번째는 이분입니다. 혹시 알아보시는 분이 계시면 더 반가울 듯싶어 글 먼저 적고 이름은 끝에 적겠습니다.
- "그러나 역사는 많이 알려진 것만 기억한다네. 진실보다 거짓이 생존할 때가 많아. 진실은 묻히고 덮이기 쉬워. 하이데거가 그랬지. 일상적 존재는 묻혀 있는 존재라고. 내가 여러 번 얘기하지 않았나. 덮어놓고 살지 말라고. 왜냐면 우리 모두 덮어놓고 살거든.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 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 게 무엇일 것 같나?"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중략.
"우리가 진짜 살고자 한다면 죽음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와야 한다네. 눈동자의 빛이 꺼지고, 입이 벌어지고, 썩고, 시체 냄새가 나고.... 그게 죽음이야. 옛날엔 묘지도 집 가까이 있었어. 귀신이 어슬렁거렸지. 역설적으로 죽음이 우리 일상 속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었던 거야. 신기하지 않나? 죽음의 흔적을 없애면 생명의 감각도 희미해져."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을 삶에서 내쫓았지요."
"죽음을 죽여버렸지. 깨끗이 포장해서 태우고, 추도 미사 드리고, 서둘러 도망쳤어. 현대는 죽음이 죽어버린 시대라네. 그래서 코로나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거야. 팬데믹 앞에서 깨달은 거지. 죽음이 코앞에 있다는 걸." -71P.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왜 그 노래가 생각이 날까요. Stay with me till the mornign.
아프리카의 아침이 떠오르는 노래가 지금 여기에서 듣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것이 감각으로 연결되는 재미, 신비. 그것을 풀어주시던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이셨습니다.
성경에 밑줄을 그어가며 새길 줄은 몰랐습니다. 물을 마시면 물 담는 그릇까지 성스러워질 줄 알았습니다. 저절로 될 것만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몸과 마음은 따로 지냅니다. 겨우 동행하는 때가 침묵할 때이며, 기도라도 해야 손을 잡습니다. 내 몸과 마음은 일치를 배워야 합니다. 풋내가 납니다. 설익었습니다. 볕이 내리고 이슬을 맞고 비바람도 줄을 그어 그림으로 그립니다. 줄 그을 것이 많아서 좋습니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선이 이어지는 것이 내가 살 것 같아 좋습니다. 마침 로마서를 지나는 중이었습니다. 어제 밑줄은 여기였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 로마서 5: 8-11
제가 좋아하는 김광석 노래 한 곡 어떨까 싶습니다.
´내 사람이여´
맑고 밝은 날입니다.
- 내가 너의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면, 빛 하나 가진 작은 별이 되어도 좋겠네.
너 가는 길마다 함께 다니며 너의 길을 비추겠네.
내가 너의 아픔을 만져줄 수 있다면 이름 없는 들의 꽃이 되어도 좋겠네.
눈물이 고인 너의 눈 속에 슬픈 춤으로 흔들리겠네. - 김광석, 내 사람이여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