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22

아침에,

by 강물처럼

아침이 밝았습니다.

다른 날과 다른 날이, 항상 같은 태양 아래 밝았습니다.


그런 적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기억.


길을 따라왔을 뿐인데 왜 그런지 몸은 가볍고 정신은 고양되며 마음은 즐겁습니다.


꽃은 보이지 않는데 그 향기에 사람이 풀어집니다.


단맛이 나는 내음이 숲에는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그와 같이 숲을 거니는 일이라면 오늘 아침은 내 감각을 사금파리처럼 다독이며 반짝이는 친밀함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오는 흥얼거림, 누구에게서 받는 인사, 세상이 고요 가운데 깨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셨습니다.




*파스카 성야의 예식이 어제 어둠 속에서 거행되었습니다.


빛이 있었고 성수 聖水가 내렸습니다.


아들이 저와 같이 같은 제단에 올라 종을 울렸습니다.


내가 해준 것이 없는데 아이가 울리는 종이 듣기 좋아서 인간적으로 기뻤습니다.


내가 그때 죽었다면 오늘 이런 미사는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사가 길면 복사들도 생각이 많아집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고마웠습니다.




두 가지를 계속 떠올렸습니다.


찬송이 울리고 복음과 강복 降福이 이어지는 순간에도 그 두 가지를 바라봤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십니다.


어디를 봐도 누구도 그 사흘 동안의 말씀은 없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비탄과 슬픔, 적막은 있어도 예수님은 어디에 어떻게 머물러 계셨는지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죽었습니다.


내가 죽고 그 사흘 동안 나는 어디를 누구를 무엇을 바라보고 있겠는가, 물었습니다.


죽음은 사건이 아니고 공간 같았습니다.


숫자로 확인되는 일이 아니라 펼쳐진 시간이며 색 色, 차원이 터무니 없어지는 무차원 無次元 같은 움직임이었습니다.


죽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돌아가시고 어떻게 존재하셨겠습니까.




그때 제 눈에 들어온 모습이 있었습니다.


주위는 환하고 사람들은 찬미하는데 아직 불이 켜지지 않은 제대 위의 초가 미사에 함께 서 있었습니다.


저와 같았겠구나. 그 3일은 저 모습이었겠구나.


그 모습이었습니다.


수많은 날들 중에 어느 날이었으며 헤아릴 수 없이 광활한 곳에 놓인 한 점이었습니다. 그 한 점이 위의 밝음으로 부활하셨구나.


심지와 같은 이.


불을 밝히는 몸.


모든 것을 기다리고 있던 제대 위의 초를 바라보면서, 빛의 예식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고 싶다던 그 말이 비로소 저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하나는 순전히 제 이야기입니다.


오늘이 내가 가장 젊은 날이라고들 하지만 언제가 너의 전성기였냐고 물으면 답은 다 달라집니다.


딸아이와 성 주간 첫째 날에 십자가를 들었고 어제 마지막 날에 다 큰 아들과 한자리에서 불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불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일도 하였습니다.


내가 전성기를 나도 모르게 지나고 있다는 흐뭇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좋은 날이다, 부활이 나의 그날이다니.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루카 24:5-7




날마다 부활이며 날마다 사순입니다.


그리고 탄생이며 죽음입니다.


슬퍼도 기쁨, 기쁨 가운데 슬픔, 그것이 옳습니다.


그래서






아멘


* 파스카 성야 미사는 죄의 노예살이에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어둠이 덮힌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시어, 죄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뻐하는 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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