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하나가 있습니다.
고약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버릇없어 보여 나와 상대를 모두 당황시키는 버릇입니다.
주사를 맞을 때 주삿바늘을 잘 바라봅니다.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뾰족하고 차가운 주삿바늘이 좋아서 그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혹시라도 잘못 놓을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세 번을 다시 맞을 때도 잘 쳐다봤습니다. 괜찮다며 간호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불편했을 것입니다.
상처라든지 통증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제가 겁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러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정말 버릇이 없거나.
어렸을 적에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혼나면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눈도 마주치지 않다가 그때는 정면을 응시했습니다. 대신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결국 매를 부릅니다.
매를 맞으면 매우 아픕니다. 공포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또 쳐다봅니다.
상대가 아니라 이번에는 제가 대상이 됩니다.
실험실의 청개구리 같은 제가 잘 보입니다.
이런 것들을 어디에 쓸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매 맞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저에게는 있습니다. 그래서 좀 무심해지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주삿바늘을 힘껏 외면하거나 고개를 돌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귀밑으로 흰머리가 자꾸 새어 나오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셨는지요.
중학교 3학년이나 되는 아이를 그렇게 막대하다니, 간이 크기도 하구나 싶으셨는지요.
어제 아침에는 결국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아이가 학교 가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잘못도 없는 애들 엄마한테 불똥이 튀었습니다.
러시아가 여기에서 전쟁을 그만 멈추지 않으면 아무래도 그럴 것만 같습니다.
6학년 딸아이가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 와중에 넋두리였습니다.
"아빠는 나한테는 잘해주는데"가 그 이유였습니다.
조용해진 거실을 지나 산이 방을 열어봤습니다.
책은 그대로 있나, 어젯밤 나한테 혼난 뒤의 흔적을 살폈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것에 안심이 됐고 평소와 다른 것은 또 그만큼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미안해하는가.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루카 24:36
내가 아는 것이 없는데 너를 불편하게 했다는 눈짓을 거기 책상에 놓여 있는 것들에게 전했습니다.
아이가 자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아이가 꿨던 꿈을 펼쳐보고자 했습니다.
무서웠을까, 화가 났을까, 슬펐을까.
저절로 내 옛날이 떠올랐습니다.
무서웠던가, 화가 났던가, 슬펐던가.
물려줄 것이 없어서 내가 몰래 감췄던 것을 물려주고 있다는 한탄이 뾰족한 바늘처럼 쿡 찔렀습니다.
낮에는 예쁜 케이크를 하나 사서, 냉장고에 넣어뒀습니다.
일이 다 끝나고 9시가 넘은 시간에 15개 촛불을 켰습니다.
역시 딸이 있어야 어색한 것이 어물쩍 넘어가는 여유가 생깁니다.
생일도 아닌데 산이는 촛불을 불어 껐습니다.
그래도 말은 해야겠는데 말이 순순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한테 노력하라는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노력하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이다. 나는 네가 보기 좋았으면 하는데.... 어제는 내가 잘못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지 않던 말을 자식에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것이 불효 아니겠나 싶어서 웃음이 났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어떤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