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25

아침에,

by 강물처럼

하늘에서 내리는 것 중에 가장 동화 같은 것은 아무래도 눈 雪입니다.

아이들은 눈을 기다리고 좋아합니다.


눈이 귀찮아지면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오늘 아침 저에게 필요한 말이 바로 드러났습니다.


´귀찮아지면서´


이 한마디 말이 저를 풀어놓습니다.


누가 묶은 것도 아닌데 꽁꽁 묶인 채로 잠을 잤고 일어나서도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곧 풀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동화적인 것은 목소리와 눈 目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일 늦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목소리가 늙으면 슬퍼집니다.


눈빛이란 말처럼 사람을 설레게 하는 빛은 없을 겁니다.


누구의 눈빛을 읽어본 적 있으신지요.


누구에게 그 눈빛이 다 읽혀본 적 있었던지요.




창세기 첫머리에 나오는 눈이 있습니다.


아픈 눈입니다.


¶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 창세기 3:5




눈이 열리면 알게 됩니다.


Seeing is knowing.




그렇게 눈이 문 門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문 가운데 가장 괴로운 문은 전쟁을 알리는 *야누스의 문입니다.


그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전쟁터에 던져졌습니다.


알고자 했으며 내가 알게 된 것을 무기 삼아 정복에 나섰습니다.


거대한 문이 열린 채로 닫히질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알고자 합니까.


과연 우리는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입니까.


눈빛 하나도 읽지 못하는데 진리만 찾습니다. 기호로 무장한 이곳을 불도저로 파헤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




오늘 마주친 눈빛입니다.




눈을/ 보면/ 알게/ 됩니다/


저에게는 저 네 마디 말이 모두 하나로 여겨집니다.


보는 것 다음은 아는 것, 아는 것은 되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눈은 내가 무엇이 되는 일입니다. 눈이 나를 되게 합니다. 된다는 것은 약속입니다. 소명이며 역할이고 거슬러 올라가 흐를 줄 아는 연어의 세월입니다.


그래서 눈이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눈을 찌를 것이 아니라 가슴을 쳐야 합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누군가가 남겼다는 말도 전하겠습니다.


눈을 감고 들으셨으면 합니다.




¶ 우리의 눈 속에는 불이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눈을 뜨면 빛이 바깥으로 퍼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깊은 밤에 우리 내면의 풍경을 밝혀주는 꿈속의 빛이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과 같다.




들여다보는 눈이 밖에 것을 안으로 들여오는 눈이라면 내다보는 눈은 안에 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눈입니다.


무엇이든지 조화 調和를 이룰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세상에 선물하는 조화 造化가 아닌가 싶습니다.




To see nothing is supreme seeing ; to know nothing is supreme knowing.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는 것, 눈이 향하는 곳은 늘 그곳입니다.


그것이 동화입니다.


내가 쓰는 지금, 여기는 동화였으면 합니다.




어제 늦은 시간에 산이 문제집들을 펼쳐보다가 화를 냈습니다.


다음 주에는 중간고사를 보는데 어쩌자고 그러는지 화가 났습니다.


열흘 전부터 몇 번을 참았던 듯싶습니다.


차라리 참지 않고 그때 말했어야 했다는 후회도 들었습니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다 갖다 내놓으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리고 잠을 잤으니 꼼짝 못 하고 내내 고생한 것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이가 일어납니다.


´귀찮아지면서´


내가 먼저 고백할 말은 그 말입니다.


타이르는 것이 귀찮았고, 참는 것이 귀찮았다. 우선 그것이 잘못이었다.


그러고 말을 시작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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