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으로 자산홍이며 영산홍이 한창입니다. 그 사이에 또 철쭉도 희고 큰 잎을 뽐내듯 환합니다.
5월부터는 꽃들이 자세를 바르게 펴고 속속들이 손을 들며 시끌벅적한 교실을 이룹니다.
편애하지 않고 두루 돌보고자 하는 선생님은 공부가 필요한 시간입니다. 민들레 노란 꽃들도 가지런히 머리를 다듬고 똘망똘망한 모습으로 건강해 보입니다. 솜털 같은 민들레 씨도 풍만하게 오른 것이 바람만 불면 어디든지 시집갈 태세입니다.
어머니도 꽃을 좋아하셨는데, 노란 수선화가 지고 나면 그 곁에서 보라색 붓꽃이 나고 다시 백합이 자라는 땅을 호미로 다듬고는 하셨는데, 아무렇게도 꽃이 잘 자라는 그 손이 지금을 살살 흔들리기만 합니다.
거기, 울 밑에 금낭화 하나 피는 데가 있었는데 올해는 어쩔까 싶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장미가 곧 5월을 다 수놓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만 그러는지, 갈수록 꽃에서 나는 향기가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라일락은 몇 발짝 떨어진 사람한테도 향기가 전해지는 매력이 있었는데 그도 심심해진 듯합니다.
꽃 이름을 알아서 써먹을 데는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꽃´ 그러면서 지나가는 것은 덜 재미있습니다. 저것이 패랭이야, 여름밤을 수놓는 큼지막하고 화려한 불꽃들이 아니더라도 패랭이꽃 닮은 불이 그 순간 켜집니다. 사람 안에 불이 켜지고 그 눈에 꽃이 비치는 재미를 순수한 즐거움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뱀딸기는 잘 알면서 뱀딸기 꽃이 얼마나 노란색인지 아마 모르실 것입니다. 꽃이야말로 색 色이란 말의 다른 이름 아닌가 싶습니다.
더럽거나 지저분한다고 그럴 때 더티 dirty 그럽니다.
하나 이해가 안 되던 것이 dirt 그러면 ´먼지, 때´ 그러면서 또 ´흙´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먼지나 때는 알겠는데 흙은 생뚱맞아 보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 요한 6:37
그런데 사람 발길을 멈추게 하는 꽃들이 가끔 있습니다.
바위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도 그렇지만 콘크리트 담 사이 갈라진 틈에서 살고 있는 꽃은 무슨 재주인가 싶습니다.
오래된 기와지붕 한쪽에 고들빼기 하나가 어떻게 거기 뿌리를 내렸는지 신통할 때가 있습니다.
흙이 없어도 먼지가 쌓인 곳에서도 꽃이 되는 씨앗들에게 dirt가 어떻게 흙이냐고 물으면 그저 웃을 것 같습니다.
2천 년 전 신앙이 그러했을 것이며 2백 년 전 이 땅의 믿음이 그처럼 미약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흙.
단순하면서 거룩한 것.
생명을 틔우는 것은 그처럼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먼지처럼 힘이 없다가도 땅처럼 단단합니다. 생명은 그런 곳에서 자라는가 봅니다. 내가 그 안에 머물고 그도 내 안에 머뭅니다. 나는 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