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볼 수 있는 시력 視力은 힘입니다. 힘은 곧 능력이며 재주입니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믿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이 믿는 것으로 바로 직행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비용을 지불하고 거기에 탑승합니다. 봤다고 아는 것이 아니며 알았다고 믿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앎과 믿음을 겉감과 안감으로 삼아 그것으로 이불을 누벼 덮는 사람들, 따뜻한 꿈을 꾸는 사람들, 움직임이 춤사위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지훈의 승무에 나오는 것처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은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는 나비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시선 안에는 또 하나의 힘이 있습니다.
그것이 통찰력 洞察力입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는 바로 그 신기한 힘 말입니다.
지금은 데이터가 그 자리를 대신 꿰차고 있습니다.
만물의 주기성을 알아차리는 힘은 통찰을 넘어 권력이 되었습니다. 데이터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데이터는 사람들을 향해서 경고합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분 없습니다, 여러분´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 6:26-27
데이터는 밖을 훤하게 내다보는 창입니다. 보이는 것들 저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그것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나를 들여다보는 힘이 insight, 통찰입니다. 그러니 언필칭 이치나 진리를 들먹이지만 그것은 먼 데 있는 낯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부정부패니 공정이니 정의의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았던 시대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모습을 보고 스스로 놀라는 힘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나, 거울은 봤던가. 거기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내 속은 휑하니 찬바람이 부는데 따뜻한 시선이 감돌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데이터를 잘 다루고 싶거든 먼저 통찰할 일입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그 힘을 기르고 난 다음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바늘구멍에 실을 꿸 줄 아는 사람은 드물고 바느질마저 다 사라졌습니다.
바늘허리 메어 쓸 일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삼아야 할지, 문득 밥 짓던 연기가 피어나던 시골집 굴뚝이 떠오르는 것은 시대의 상실인지, 시대의 유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