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라는 사람은 의리보다 정에 움직이는 사람인 듯싶습니다.
뜨겁고 열정적이어서 알아보기 쉬운 차림이 의리라고 한다면 주섬주섬 챙겨 입고 긴가민가하면서 나오는 차림은 정 情인 것 같습니다. 매운 고추장 맛은 의리에서 나고 구수한 된장 맛이 정에는 있습니다. 꽃을 만나러 가는 바람은 의리로 용감하고 꽃 만나고 가는 바람에는 정이 흐릅니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곳입니다.
어떤 책은 일부러 시간을 들여가면서 읽는 책이 있습니다. 종교 서적은 절대 서둘러 읽어서는 아무 뜻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듯 책 몇 권을 옆에 쌓아놓고 지냅니다.
많이도 아니고 한 챕터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 더미를 하나씩 내려서 읽고 밑줄 긋고 다시 쌓으면 2시간 정도 걸립니다. 그렇게 해서 한 달쯤 지나면 어지간한 책들은 다 고분고분해 집니다. 마치 노을에 젖어서 누구를 기다리는 마당, 장독대, 두레박 같은 표정들이 책상에 그림자처럼 누워서 침묵을 수행하는 듯합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목성균 연보까지 다 합치면 626페이지, 연암서가에서 나온 ´누비처네´는 수필집입니다.
그 책 546페이지에 가름끈을 넣고 일어섰습니다.
제9부 꽃이 핀 자리라는 마지막 장을 남겨놓았습니다.
순전히 그 선생님 때문에 ´연풍´에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가보고 싶어지니까 연풍이라는 이름이 예뻐 보입니다. 그래서 또 찾아보니 ´연풍 성지´가 있습니다.
아, 달콤한 5월 5일, 어린이날의 햇살입니다.
쉬는 날이 없이 살지만 일하는 날도 없이 살자는 것이 제 소박한 바람입니다.
누비처네는 마지막 장을 남겨 놓고 연풍에 다녀와서 아주 천천히 나머지를 읽을 생각입니다.
우연찮게 같은 날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마쳤습니다.
공부,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위해 떠나시는 길에 마다하지 않고 깨우쳐 주신 그 마음과 혜량에 거듭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딸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가장 아쉬운 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걸´이야. 그때 미안하다고 할걸. 그때 고맙다고 할걸.... 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선생님의 페이지를 하나 더 펼쳐보겠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리면 다리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나는 소아마비에 걸린 아이처럼 어머니를 여읜 열 몇 살에 그 감정이 멈춰버렸네. 지금도 어머니를 꿈에서 만나면 그냥 말없이 울어버리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없어."
한 다스의 연필과 노트 한 권 대신에 노트북을 챙기고 수첩을 가방에 넣습니다.
훌륭한 인품도 뛰어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좋은 것은 따라 하고 싶습니다. 목성균 선생님을 낳고 품었던 연풍에 가서는 서정을 배우고 길 위에서는 이어령 선생님의 생명이 자본이 되는 이치를 자꾸 떠올리고 싶습니다.
5월, 방금 세수하고 나온 청년의 얼굴 같다던 그 말끔한 계절.
세수하러 갑니다.
손도 씻고 얼굴도 씻고 그 물에 발도 씻겠습니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6:51
그리고 그 빵을 받아먹겠습니다.
어린이날도 백 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백 년은 어떤 세월이었을까.
그중에 내가 오십을 다 채웠다고 생각하니 순전히 남 같지는 않습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꽃을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