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입니다.
아이들은 홍천을 모릅니다.
홍석천? 그러고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근 30년 다 되어가는 군대 이야기입니다.
첫 휴가였습니다.
원통에서 상봉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홍천 터미널에 10분 정차를 했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참이었는데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렸습니다.
언뜻 보이는 것이 누군가 바닥에 쓰러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다가갔습니다.
차림을 보고 젊은 여자인 줄은 알았는데 그렇게 예쁜 아가씨일 줄은 몰랐습니다.
다행히 아가씨를 일으켜 세우고 괜찮으냐고 묻는 사이에 아가씨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가씨는 주변에 사람이 몰려 있는 것이 창피한 눈치였습니다.
어떻게 수습을 해주면 좋았을 것을, 저도 겨우 스물둘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계속 아쉬운 어떤 것이 남았던 기억입니다.
얼굴도 금방 잊었지만 서른 해가 다 지나가는데도 홍천은 그 여운으로 남아 있습니다.
옅은 향수 냄새도 났던 거 같은, 그것이 마치 찔레꽃 아니었나 싶은 것은 내 마음대로 그려보는 상상입니다.
어제는 연풍에서 오후를 보내고 원주에 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식당에서 마주친 연풍 사람들은 그런 눈치였습니다.
연풍에 뭐 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나.
볼 것 없는 것을 보러 다니는 것이 저의 소박한 취미입니다. 그리고 왜 볼 것이 없나요, 연풍 성지는 기도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거기 성당 안에도 부활초가 있었습니다. 숨만 쉬고 앉아 있어도 기도문이 되어 거기로 옮겨 갈 것 같았습니다. 불 켜지 않고 불이 켜지는 짧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내 안에 불이 켜졌습니다.
오늘은 서화면 천도리를 지나 을지 전망대와 땅굴을 보러 갈 것입니다.
펀치볼 그 일대가 바로 제가 있었던 곳입니다.
인제, 원통, 용대리, 서화리, 향로봉, 양구까지 무던히도 걷던 땅입니다. 제가 지키던 철책선이 거기 있습니다.
그때 서른 해 전에 오늘을 어떻게 짐작이나 했을까 싶습니다.
산이와 강이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거기에 다시 올 것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 요한 6:54
곤하게 자고 있습니다. 햇살은 벌써 환하고 저는 묵상을 적고 있습니다.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흐르는 숙소 한편에서 이 편지를 적습니다.
복음서를 기록했던 성인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 아침에 문득 궁금해집니다.
기록하려는 사람은 늘 틈을 보며 지냅니다.
어둠이 밝음으로 몸을 바꿀 때 또는 밝음이 어둠 속에 제 모습을 포개어 올 때 그들은 어떻게든 적어 냅니다.
손으로 적지 못하면 눈으로, 눈으로 벅찬 것들은 깊은 호흡으로 새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 년이 지나고 또 천 년이 지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피곤하지만 감사한 일입니다.
박경리 선생님이 머무시던 텃밭에도 들렀습니다.
장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주인이 있었다면 반들반들 사람을 맞았을 것인데 해묵은 것처럼 헤실헤실한 모습이었습니다. 산골자기로 드는 봄볕만 가슬가슬 눈이 부셨습니다.
떠나고 읽고 기도하면서.
먹고 자고 핸드폰 하면서.
그 두 개의 영역 안에서 우리는 까불거립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