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신부님과 신자들의 성가는 어떠셨는지요.
어제 때때로 들었던 것이 열 번은 넘었을 것입니다.
울림이 있었습니다.
냉이꽃은 올망졸망 하얗고 꽃다지는 또 노랗습니다.
발왕산 꼭대기에는 아직 진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봤던 야생화들, 더도 말고 딱 하나 이름을 외웠었는데 그것도 어느 순간 까맣게 잊었습니다. 아쉬워하지 않기로 합니다. 자랑할 것 아니면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있는 듯 없이 사는 편안함이나 없어도 있는 그 즐거움은 사람을 깨우칩니다. 풀 같은 꽃들은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제비꽃, 봄날 밤에는 별에서부터 제비꽃 사이로 바람이 붑니다. 별 하나가 간직한 전설이 제비꽃 하나마다 내려앉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밤을 지낸 꽃들이 먹먹한 표정입니다. 보라가 짙습니다. 저 자주색은 옷고름으로 꼭 한 번 봤으면 싶습니다.
꽃 같은 풀들은 풀 같은 꽃.
다시 민들레를 들여다보는 나이가 됐습니다.
양지꽃도 토끼풀도 꽃마리도 풀입니다. 풀에게서 꽃을 봅니다.
작고 흔하고 그렇지만 샛별 같은 꽃들이 거기에서 흐릅니다. 밤새 흐릅니다.
흐르는 것들은 흰빛이 감돕니다.
흰 것들은 안식을 돕습니다. 돌돌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이불 삼아 덮고 자는 사람은 꿈속에서도 웃습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 요한 10:27
십자가 닮은 사람은 사람 닮은 십자가.
그의 손을 잡으면 두툼하고 투박해서 그리고 큼지막해서 안심이 됩니다.
그녀의 손은 작고 소박해서 그리고 따뜻해서 좋습니다.
산에 다니는 부안 선생님 손이 그렇고 송학동 성당 세 번째 줄 왼편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수녀님 손이 그렇습니다.
그분들 손을 잡을 때면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자가 떠오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게 편안한 숨을 건네는 호흡들이 있습니다.
여독 旅毒은 어떻게 푸는 것인지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 장을 남겨놓고 떠났던 연풍 기행, 거기에서 돌아와 펼쳐 본 이야기 한 대목이 이렇습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서서 보면 모충동 뒷산이다. 거기 생각지도 않은 철쭉이 한 그루 화사하게 꽃을 피웠다.
모충동이 어느 동인지 모릅니다. 그 뒷산은 더욱 모르고 철쭉이야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다릅니다. 연풍을 보고 온 저는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때와 달라져 있습니다. 그를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더 잘 읽혀서 마치 책을 손으로 읽는 기분입니다. 만져가면서 십자가 같은 사람을 느끼는 듯, 어쩌면 십자가가 저를 만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동화 같은 착각으로 피로를 덜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래저래 좋은 날입니다.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이 새삼 많이 고마웠던 어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