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도 안 계시고 성가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곁에서 시중드는 복사도 없었습니다.
작은 제단 가운데 십자가, 그래 맞습니다. 달랑 십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대관령의 아침 공기는 섬세했습니다. 와 본 적 없던 곳이지만 - 옛날 대관령이 보고 싶었습니다 - 지리산 속 와운 마을 같은 곳에서 코 끝을 건드리며 맡아지던 장난기 다분한 냄새가 없었습니다. 천연스러웠던 솔향이나 뱀사골을 흐르는 물내, 구름도 한 번씩 깊이 들어마실 것 같은 산내음,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은 알이 굵었던 산소 입자들, 처음 맡아본 대관령의 아침 공기는 2% 아쉬웠습니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과 올림픽으로 정비된 아스팔트 도로들이 이곳을 편하게 바꿔 놓고 그 덕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었지만 대관령이란 이름까지 함께 바뀌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성 베네딕도 대관령 성당은 신부님이 외국분이셨습니다. 존 케네디 신부님은 한국말이 유창하셨습니다.
무엇에 끌렸을까요.
좀처럼 고해성사를 잘 안 보는 저는 고해소 앞에 앉았습니다.
소박한 것의 미덕은 자연스럽다는 데 있습니다.
동네 사랑방 같은 성당에서 지나가던 나그네가 잠시 행장을 내려놓고 시름까지 풀어보았습니다.
볕이 온화하고 바람이 온화하면 꽃봉오리가 열립니다.
신부님 강론 말씀을 참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렇게 들어도 전부 다 알아듣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신부님도 열심이었고 자리에 앉아서 듣는 신자들도 진지했습니다. 그 말씀 중에 쏙 귀에 담기던 말이 ´홀랑 십자가 하나´였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살고 받은 것이 홀랑 십자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익히 들어서 좀 아는데, 우리말 ´홀랑´을 외국인 신부님 입에서, 대관령에서 듣고 있으니 내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물기다 다 말라버린 가을 낙엽이라도 되어서 바람에 훌쩍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말이었구나. 그렇게 가난한 말이었구나.
길이 자주 막혔습니다.
일찍 출발했는데 도로 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어디냐고 그러면 동감하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이렇게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으니까 그것이 어디며, 다른 때 같으면 벌써 기운이 빠져서 자리에 누워도 몇 번을 누웠을 텐데 이것이 어디냐 싶었습니다.
나들이 첫날, 차 안에서 아내에게 건넸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돌아가셨던 분들이 지금 나한테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뭐겠어, 돈이겠어, 소설이겠어? 아냐,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이야. 모두들 소풍을 가고 싶어 하셨거든. 여행 가자고 다들 그러셨거든."
유난히 색이 선명했던 올해 봄입니다.
5월은 꽃들, 초록을 가진 생명들이 합창 대회를 여는 계절입니다.
그 노래를 들으러 어디든 가야겠습니다.
왔으니까 또 가고, 갔으면 다시 오는 것이 자꾸 즐거워지는 계절입니다.
선물로 대관령 성당에서 미사 중에 들었던 성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듣기에 좋았습니다.
같이 들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