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43

아침에,

by 강물처럼

습관처럼 바지 주머니 있는 곳에 손바닥을 대어봅니다.

잠옷 차림이어서 주머니가 달렸을 리도 없는데 주머니를 찾습니다.


막연할 때 나오는 동작입니다.


잠에서 깨어 여기 이렇게 앉으면 다들 적당히 멀어 보입니다.


선인장도 그렇고 앞에 있는 책들도 건너편 아파트도 다른 때보다 더 고요합니다.


마치 연극이 시작하기를 기다리는 관객들처럼 말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키보드 위를 맡기로 한 손가락들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호주머니가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기다립니다.


빈손입니다.




지혜로운 것들은 샘처럼 솟아납니다. 마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혜가 될 테니까요.


그러나 그마저도 물 말아먹었습니다.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촉촉한 새벽에 사막으로 나왔습니다.


이왕이면 아라비아를 지나 예루살렘 성전까지 오래 볕에 그슬릴까 합니다.


까맣게 타고 더 이상 뜨겁지도 않은 모래알, 그때 비로소 지중해나 갈릴래아 호수에 빠져볼 일입니다.


말에서 말을 지우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그때야말로 0 이 될 수 있을지요.




쓸 수 없는 빗자루를 들고 산문 밖까지 다녀옵니다.


동구 洞口가 사라지고, 그보다 먼저 사람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마을은 도시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기념물이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시스템 청소기가 좋습니다. 빗자루는 잊으세요. 그러니 쓸 수 있는 지금이라도 아껴서 써보는 것입니다. 지혜를 탓할 일도 물기가 말라 가는 몸뚱어리를 원망할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손가락이 쓰고 있습니다. 화석이 될 꿈일랑 아예 꾸지도 않습니다. 앉은 채로 등신 等神이 되는 것입니다. 풀잎 같은 바보 말입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 요한 12:46




누가 빛을 보았나.


어떤 말이, 어떤 글이 빛일 수 있나.


턱없습니다.


그래서 사막으로 나아갑니다. 배를 타고 아니면 바람을 타고 가보려 합니다. 모래 위에 풀잎이라고 쓸까 합니다.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血)를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 풀잎,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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