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44

아침에,

by 강물처럼

이름이 문제입니다.

이름을 아끼는 사람이 있고 이름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 요한 13:16




먼저 말이라는 것부터 여간 다루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말이 많아도 말이 없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말로도 전쟁은 일어나고 또 화해도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말은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은 말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사과가 애플 Apple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헷갈려서야 어디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가르칠 수 있을까 늘 주저합니다.


눈 딱 감고 하늘은 스카이 Sky, 파랑은 블루 Blue 그래야 하는데 그 말을 머뭇거립니다.


아이들은 빨리 배우고 싶어 합니다.


우리말이 서툰 것을 직시하는 학생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미분이며 적분 같은 수학 문제를 풀면서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한 것이 해피 Happy가 맞겠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결승점을 향해 직선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곡선을 꺼내 보여주는 것은 심술궂은 것 같아 그만둡니다.




상징은 속이 텅 비어 있는 기타 같습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라고 하면 더 근사할 것도 같습니다.


이런 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지런히 비어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소리가 날 수 있는 기초적인 상태가 마련되고 그다음 현악기든 타악기든 취악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선 소리가 좋고서 그 좋은 소리를 연마해 세상에 다시 내놓는 것이 음 音이 됩니다.


음은 해석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만 그렇지, 결코 다 알 수 없습니다.


예술이라는 형태를 띠는 모든 것들 - 예를 들어 ´모나리자´나 ´비너스´ 같은 -은 완전히 분해되거나 분석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치가 됩니다. 그것으로 생명을 이어갑니다. 표정이 더 읽히지 않습니다. 그때 신비로 남습니다. 요즈음은 신비마저 마케팅에 이용하는 경향이 짙어져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지만 어떻게든 그 영역을 지켜가는 것이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길임을 자각합니다.




시 詩를 적어 놓으면 도망치듯 달아납니다.


재미없으니 맛볼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무엇이고 손님은 무엇이었던가 생각해 볼 일입니다.


名者實之賓, 명자실지빈, 이름은 객이고 실제는 주인이다.


인생은 과연 흥미로운 것이었으며 삶은 축복이거나 고해 苦海인지요.


종교가 무엇인지 잘 아시는지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옳습니다.


내 말이란 말부터 없습니다.


목욕탕에서 씻고 나온 그 순간 벌써 다른 것들이 엉겨 붙습니다. 말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인 聖人들은 상징으로 뜻을 전하셨습니다.


말이었지만 쉽게 썩는 물이 아니라 천 년 세월을 건너오는 생명수가 되었습니다.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요한 13:20




말씀을 듣는 방식은 다릅니다.


귀가 아니라 눈, 눈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없어도 들을 수 있으며 없으면 들을 수 없는 그것으로 듣습니다.


토끼나 돼지, 소나 말과 우리가 다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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