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45

아침에,

by 강물처럼

I My Me Mine.

의자라는 말 대신에 걸상이란 말을 더 많이 썼던 듯합니다. 책상, 걸상이 바늘과 실처럼 하나의 짝이었습니다. 책상 위에 걸상 올려놓고 뒤로 싹 밀어 놓으면 교실 청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책상들 기억나시죠. 그 시절의 아이들 모습이 어땠냐고 누군가 물어오면 저는 그 나무 책상 같았다고 떠올릴 것입니다. 울퉁불퉁하게 골이 진 것은 당연하고 구멍이 뚫린 책상도 많았습니다. 그 책상에 책을 펼치고 공부를 했습니다. 칠판 가득히 선생님께서 적어 놓은 것들을 공책에 따라 적었습니다. 연필이 닳아질 때까지 참 많이 쓰기도 했습니다. 책받침 없이는 글씨가 잘 써지지 않았던 시절, 오래전 그날들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중학교에 갔습니다. 동네방네 뛰어놀다가 어느 날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훨씬 멀리 있는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때 책받침 뒤에 쓰여있던 에이비씨를 다 외웠다는 것 하나로 꽤 든든했었는데 I My Me Mine, 인칭 대명사를 배우는 날 영어가 무서워졌습니다. 뭐라는 것인지 통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면 불안하다가 울적해집니다.




아이들은 소유격을 다른 것보다 조금 더 어려워합니다. 나의, 너의, 우리의.


나의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고쳐 부르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만 갖고 있는 독특한 소유관계가 하나 거기에 있습니다. My mother 그러면서 우리 엄마는 ~ 그러는 것이 아주 아이들을 골탕 먹이기 딱 좋습니다. Our, 우리의-라고 방금 알려줘 놓고 딴소리하는 격입니다. 그 부분을 빨리 그리고 비교적 깔끔하게 해치우는 아이들은 언어를 쉽게 깨우쳐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의 어머니나 나의 선생님이 영 틀린 것도 아닙니다. 설명이 착실하게 따라붙어야겠다는 인상을 주고받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설명이 언어의 공부를 돕기도 하지만 때때로 설명으로 언어가 훼손되기도 합니다. 새벽 오로라 같은 분위기가 언어에는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같이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럴 때 감각이 동원됩니다. 소질이라고 하는 것도 등장합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 요한 14:2




우리 집 꼬맹이하고 떠들다가 가끔 묻습니다. 네 마음이 그러냐고 묻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에게 그 마음의 주인이 누구냐고 또 묻습니다.


"당연히 나지!"


기다리지 않아도 대답이 금방 나옵니다.




내 마음, 내 몸, 내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또 묻습니다.


"너는 내 아이가 맞냐?"


무슨 영문인지 몰라 아까보다 주저하며 끄덕입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너를 하지 못하는데 어떡하지?


그 말은 꺼내지 않고 나를 향합니다.




오십이 넘어 ´소유격´을 다시 점검합니다.


소유는 내 것이 아닌 나한테 맡겨 놓은 어떤 것들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잠시 맡은 것들, 내가 점유하고 있는 것들에 눈을 뜹니다.


우리는 누구의 주인인가.


누가 우리의 주인인가.


과연 세상은 주인과 종의 관계로만 설명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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