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새로운 것은 과거라고 그랬었는데 5,18이 지났습니다.
과거와 마주칠 때 누가 주인인가 생각합니다.
나인지, 그인지, 아니면 그때였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나는 손님이거나 지나가는 행인 1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다 지난 과거라도 짊어지면 무겁습니다.
식은 밥을 먹고도 땀을 흘리는 옛날 아저씨들, 그마저도 나는 살지 않았습니다.
대사가 없이 무대를 휘 돌아가는 세월 같은 역할이 좋습니다.
탱크나 M16, 곤봉을 휘두르는 병사 1과 2, 확성기에서 들리는 젊은 여자 목소리 1, 헬기에서 내려다보는 시청의 모습. 그 시청 건물 안에서 불안한 눈빛을 나누는 대학생 1과 어떤 아저씨들 1, 2, 3. 그리고 대통령.
우리 시대 모든 사람이 그 무대에 서 있습니다.
언제쯤 연극은 끝날까요.
혹시 진짜 연극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얼마만큼 여기에서 멀어져야 저 광경이 순해 보일까 싶습니다. 정치가 처량하게 보이는 무대입니다. 마치 햄릿과 같은 연극입니다. 클로디어스의 욕망도 햄릿의 분노도 오필리아의 슬픔까지도 묘파기꾼의 손에서 놀아나는 해골이 되고 맙니다. 약한 자들의 우울한 합창이 저승에서도 계속됩니다.
To be, or not to be.
내가 마주칠 과거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분명히 나였을 텐데, 내가 거기 있었는데 나는 없고 얼굴만 남았습니다.
영혼 같은 얼굴이 나를 내려다봅니다. 이제 만나셨습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독백이 무대를 채웁니다.
객석으로 멀리 퍼져나갑니다.
나는 속삭이지만 세상은 듣고 있습니다.
내 고백이 문장이 되고 작품을 구성합니다.
약한 자여 Frailty, 그대 이름은, thy name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