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점심 드시게요 5

포도 나무

by 강물처럼

커피가 꼭 커피만은 아니었습니다.

화엄사 아래에서 내오는 차 茶였을 수도 있고 청량산 기슭을 헤매다 얻어 마시는 음료일 수도 있습니다.

인제 곰배령 어디쯤에서 졸졸 흐르는 시내여도 괜찮을 때가 많습니다.

나를 쾌 快히 그리고 귀 貴하게 적시는 물.

그 물을 마시고 우리는 높아집니다.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물과 포도주를 보고 있으면 오래된 바닷속 전설을 목격하는 기분이 됩니다.

어떤 물은 내게 스며듭니다. 그 물은 영롱합니다. 빛을 담고 말씀이 됩니다.

물의 씨앗, 그것이 영성 같은 것일 겁니다. 그 말은 지워지거나 잊히지 않고 오래 남습니다.

사랑하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빛나는 그 말로 쌀을 씻고 밥을 지어먹습니다. 입을 헹구고 목을 축입니다. 마시고 몸을 씻습니다.

그것이 일상이 되고 기도로 그 테두리를 두르면 종교가 됩니다.

내 안의 종교가 생겨납니다. 병사가 됩니다. 선생이 되고 노래를 부르고 글을 씁니다. 거기에서 샘이 솟습니다. 그 물은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씻는 데에도 필요하고 예수님의 상처를 닦는 데에도 사용됩니다. 물이 생명입니다.


¶삶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는 길을 잃는 법도 없습니다.


어제 봤던 문장들 중에 뇌리에 남아서 내 길을 안내하는 파울로 코엘료의 스파이의 한 대목입니다.

마타하리는 총살을 당했습니다.

그런 시대가 있습니다. 목말라하는 시대, 해갈되지 않는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시대와 사람들이 있습니다.

피가 된 물을 꿀꺽꿀꺽 마셔야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전쟁 같은 시대.


흙으로, 알갱이마다 천국의 종소리가 들리는 듯한 고운 흙이 생명을 가꾸는 때와 장소가 종교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 꾸며져 있으며 여기에도 저기에도 존재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만 키우는 밭이 아니라 유대인도 러시아 정교회도 여의도 순복음 교회도 실상사나 화계사에도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에도 흙으로, 흙이 되는 물이어야 합니다.


나무로 풀로 꽃으로 그 위에 무당벌레, 딱정벌레, 집게벌레가 되어 흘러야 합니다. 다 살아야 나도 살 수 있습니다. 나 혼자 부처가 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여기에서 살다 저기로 갈 뿐인데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욕심을 부릴까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꽃이 되십시오. 부처가 되고 예수가 되어 같이 흠뻑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비를 맞고 놀아본 적 있습니다. 그 비는 옷이 적지도 않고 몸이 춥지도 않고 그렇다고 달달한 맛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향 香이 날 것입니다. 향기가 있고 울림이 있는 향 響 말입니다.


소리 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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