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것은 책을 더 잘 읽기 위해서입니다.
도서관같이 고요한 속에서 책을 읽을 때에도 리듬이란 것이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고 해서 꼭 죽은 것은 아닙니다. 숨이 있는 것은 결이 있습니다. 결은 누웠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그것은 하나의 동작이 되고 그 동작이 서로 마주치면 그때 의미를 갖습니다. 마치 자동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듯이 너울 같은 흐름 위에서 의미는 세상을 다닙니다. 물이 과연 그렇습니다. 그래서 물을 보면 시원 始原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태초의 모습을 그리고 싶어 하는 화가의 붓 끝에서 또는 히브리 말로 하르마게돈이라고 하는 곳 (묵시록 16:16)에 모이는 임금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의 손끝에서 흐느낍니다. 숨이 있는 것은 소리가 있습니다. 공간은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음악 소리에 묻혀 책을 읽습니다.
희 噫라.
커피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커피를 마시다가 어느 순간 나는 없어지고 커피 - 맛과 향- 만 홀연히 공중에 남습니다. 그 과정이 3 쿼터로 구분됩니다. 저는 그것을 이름 아래, 그 이름, 이름 위에라고 부릅니다. 무엇이든 이름 아래에 있으면 내 동작을 중심으로 일이 진행됩니다. 일어나서 시간을 보고 아니면 기분 상태에 따라 커피를 준비합니다. 내 의지와 생각대로 척척, 그러면 됩니다. 사소한 방해 - 예를 들어 휴대폰이 울린다든지 평소 마시던 잔이 보이지 않는다든지 -는 귀여운 소품처럼 여겨집니다. 볼륨을 조절할 수 있는 위치를 만끽하는 것, 거기에서 행복해합니다.
다음에 커피와 마주칩니다. 그 이름이 내 이름과 같은 눈높이에서 흔들립니다. 반갑거나 맛이 씁니다. 저쪽의 파동이 이쪽으로, 그리고 내가 보내는 파동으로 저쪽이 반응합니다. 연애 같은 시간입니다. 맛과 향을 본받고 싶어 하고 비로소 반합니다. 반하는 것은 때로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내가 높아진 것입니다. 눈을 떠보니 유명해졌다는 말보다 실감 나는 프레이즈는 없을 것입니다. 커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10분 전과 달라진 자신을 발견했던 적 있으신지요. 무릎을 손으로 치면서 탄복하며 칭찬하는 것도 격상 擊賞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격상 格上 됩니다. 아무것도 높아진 것이 없는데 내 격이 높아짐이야말로 평화 같습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
어느 평화에 의지하고 어떤 평화를 주문하셨습니까. 그 평화에 평화를 빕니다.
´라 파스, La Paz ´
하나 더 배워볼까 합니다.
´ La paix du Christ ´, ´라 뻬 두 크리스트´
아이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다음 날에는 가능한 미사에 가면 좋습니다.
미사 가운데 평화를 만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
´ Peace be with you. ´
아마 저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그 순간을 반가워할 것입니다. 옆 사람, 또 내 옆 사람, 앞사람, 그 옆 사람, 뒷사람, 그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보내는 신호, 평화의 결들이 춤을 추는 바다. 우리는 그 바다에 배가 되기도 합니다. 우주로 날아가는 우주선도 됩니다. 거기서 마시는 커피, 안성기의 옛날 시에프가 생각납니다. 음~ 이 맛.
인생이야말로 커피 닮은 이름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그 이름 위에서 멀리 바라볼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나는 희, 그러면서 망설일 것입니다.
기쁜 것도 희 僖, 슬픈 것도 희 噫가 되니 말입니다.
평화가 그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