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살 만해진 듯합니다.
투정이 많아진 것을 느낍니다. 분명히 더 많이 먹을 수 있고 잠도 더 잘 자는데 사람이 불평이 늘었습니다.
내 눈에 새겨진 눈금은 어디로 갔는지, 벌써 희미해지면 안 되는데 자주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어디냐, 그게 어디냐 싶었던 마음이 다시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건 이렇지 않느냐, 입바른 소리인 양 눈에 힘을 주고 떠듭니다.
곧 삼진 아웃이 될 것입니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실력은 숨어버립니다. 내가 앞에 나서려는 나를 주체하지 못하면 아무도 나를 붙잡지 못합니다. 그래서 좀 아파야 합니다.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아야만 아픈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서 恕, 예수님이 지니고 다니던 통증의 이름입니다.
서로 같은 것이 여 如입니다. 참 부드러운 마음이 다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주기만 해도 고마운데 아래에 있습니다. 흰 고무신이 덜 외롭고 단정하게마저 보이는 탓은 아마 섬돌 때문일 것입니다. 섬돌 위에 놓인 신발들은 모두 꽃처럼 보입니다. 차를 마시는 찻상이래도 그만큼 깊은 정취가 없습니다. 낮이 환한 속에서도 빛이 어두워지는 데에서도 다정하고 다정한 돌입니다. 돌 위에서는 무엇이든 같아지는 것인가 싶어 바위에도 훌쩍 앉아 봅니다. 세상이 다 같아 보입니다. 그 마음을 용서라고 부릅니다.
그러고 보면 이치가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Understand 그러면 아시다시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기둥을 받쳐주는 주춧돌이 우뚝 서 있는 모습입니다. 발밑을 맡아주는 마음이야말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의 실천인 듯합니다.
그 마음이 있어서 아프고 없어서 또 아픕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5:12
눈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 아들도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겨우 희미하게 남아있는 한쪽 눈으로 아버지에게 바다를 보여줍니다. 둘이 나란히 걷습니다. 둘이 손을 맞잡습니다. 희미한 아들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아버지는 모릅니다. 그 아버지를 보면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잘 못 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