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뵙고 싶은 분이 한 분 계십니다.
바람 편에 말씀만 들었습니다.
고맙게도 이 편지가 선생님께도 닿는다고 들었습니다.
質勝文則野 질승문즉야 -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文勝質則史 문승질즉사 -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계란찜이나 된장찌개가 올려진 뚝배기를 떠올리면 됩니다. 뚝배기는 질박 質撲한 바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단순히 생긴 모습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기질 器質, 그 흙의 두꺼움, 불에 견디는 성질과 그릇이 타고난 운명과 그 운명을 묵묵히 견지하는 태도 전부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질박한 것은 연하지 않고 순하지 않으나 그보다 더 연하고 순한 것 또한 없습니다.
그것을 바탕, 질 質이라고 부르고 문 文은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 쓰인 문장 같은 것이 문 文입니다. 그것은 말이 되기도 하고 표정이며, 차림 같은 것, 즉 외양 外樣이 됩니다.
공자님 말씀입니다. 바탕이 겉을 넘어서면 촌스럽다. 촌스럽고 촌스러운 제가 보입니다.
겉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다. 저야말로 겉치레에 매달려 대롱거립니다.
공자님은 그와 같은 자세로 학문과 수양에 힘쓰라 권하셨지만 이만한 처세술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빈 彬이란 이름을 쓰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빛나고 아름다운 삶을 바라는 뜻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文質彬彬 문질빈빈 - 겉과 바탕이 잘 갖추어져 훌륭한 것
然後君子 연후군자 - 그런 다음에 군자다.
큼지막하게 떨어져 나가는 그린란드의 빙하. 녹아 없어지는 것들, 마치 스스로 물속에 뛰어드는 21세기의 궁녀들 같습니다.
아, 오로라만 신기한 줄 알았습니다. 추워야, 얼음이 있어야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렇게 그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겉과 바탕이 어울려 빛나고 있습니다. 마지막 춤을 출지도 모릅니다. 나 때문에, 사람들 때문에.
군자 君子도 다 사라지고 멸종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패러다임을 관통하는 존재야말로 우리가 놓치지 말고 열심히 쫓아서 배워야 하는 스승일 텐데 우리는 여기에서 정신이 없습니다. 바쁘고 바쁘고 그리고 바쁩니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 16:9
선생님은 산을 다니십니다.
훌훌 다니십니다. 바탕과 겉이 사이좋게 걸음을 놓습니다.
저는 그 덕을 얻고 싶습니다.
두 손을 모아서 한 움큼 받아먹고 싶습니다.
이런 프러포즈는 참 떨립니다.
나무 밑에 저절로 생긴 길을 따라 걸으면서 고마운 줄 몰랐습니다.
박은경 선생님의 건강을 빕니다.
누군가 저와 같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을 것입니다.
가시를 꺾는 일도 없이 돌멩이에 걸리는 일도 없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