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358

아침에,

by 강물처럼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 신화는 결국 물방울 이야기였습니다.

끊임없이 똑똑 떨어지는 물에 바위가 뚫립니다. 망치나 정, 드릴로 뚫는 구멍은 바위를 상하게 합니다. 바위 모양은 좋아졌을지라도 바위라는 이름을 그 순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물로 생긴 틈은 다릅니다. 그것은 길이 됩니다. 가치가 달라집니다. 물도 높아지고 바위도 높아져서 다른 격 格이 됩니다. 우리가 가지 못하는 길이 거기 있습니다. 공 空, 하얀 구름 너울 쓰고 봄이 오는 길,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노을 길, 내 발자취가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될 수도 있으니 눈 덮인 들판도 함부로 걷지 않는 그 길이 바위에게 생겨납니다. 공 空으로 만들어진 것은 상처 주지 않고 상처 입지 않습니다. 공간을 갖습니다. 공기가 생겨납니다. 공허한 것은 하나의 덕이 됩니다. 십자가에는 색 色이 없습니다. 원망과 분노, 저주를 담고 있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내 십자가와 예수님의 십자가가 거기에서 다릅니다. 내 십자가는 불쾌함을 가리느라 네온으로 반짝거립니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그것을 내내 굴리고 있습니다. 마치 십자가를 둘러멘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루카 24:49




예루살렘은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예루살렘이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공 空이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색 色입니다.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있습니다. 그 길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바로 종교입니다.


내비게이션도 성능이 좋은데 지도 보는 법을 가르치면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2천 년 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람이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 종교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믿을 것은 무엇입니까.




토요일이니 이런 묵상 어떨까 싶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 온몸이 곪은 나병 환자였다. 그가 말했다.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이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부디 저의 죄를 소멸해 주십시오."


달마가 답했다. "그럼 너의 죄를 내놓아라. 내가 그 죄를 없애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