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고 동작에 여유를 부리면서 토요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물을 한 잔 따라 마시며 어제는 더웠구나, 북쪽으로 난 창에다 대고 혼잣말도 건넸습니다.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고개도 살랑살랑 흔들었습니다. 자, 자리에 앉습니다. 어디로 가볼까, 무엇을 타고 갈까, 구름이라도 불러볼까, 맥없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사람이 문장으로 앞에 나타나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특이한 케이스의 비문증이 발견되었다고 학계에 발표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도 자랑이 될 수 있을까, 저 혼자서 좋아라 합니다. 오늘 만나는 어떤 문장보다 더 살풋할 것을 직감합니다.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큰 것이 얻어걸린 기분입니다. 나머지 하루는 그대로 덤입니다. 어허, 신나는 토요일.
- 이 씨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작업실로 가서 잡초 뽑으며 땅을 일구러 가기 전까지 꼬박 6시간가량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림을 그린다. 젯소를 서른여섯 번 칠하고 사포질을 반복해 만질만질해진 거대한 캔버스 위에 가느다란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어가며 마치 수행하듯 그린다. 그 무아지경 속에서 이 씨의 지난 경험은 상상의 구도를 더해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다. "몰입하면 할수록 맑고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정신이 살아나요. 나는 자유야.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해서 오후만 되면 그림 그릴 새벽 2시가 기다려져요." - 중앙일보 6월 4일 기사
정말 필요한 물은 한 잔입니다. 마침 갈증이 날 것 같았습니다. 어중간하고 멍한 채로 새벽을 지나는 것이 부질없다 싶어 다른 것들을 하나씩 일로 삼아 움직이려던 차였습니다. 갈증은 늘 갈등에서 생겨나는 생리현상인 듯합니다. 우선 목을 축이고 어디를 가려던 참인지 나를 붙잡고 물어야겠습니다. 거기는 어디냐?
윤동짓달 스무하루 날이면 어떠냐 싶습니다. 기약 없는 것이라도 소망하는 일이 내 삶이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색상이며 꼴입니다. 형태를 갖춘 모양은 아닌 듯합니다. 내가 끌리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 꿈, 허상 같은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각각 자기 좋아하는 것들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새벽으로 돌아갈 일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떠드는 일은 역시 어색합니다. 그림은 그릴 줄 모르고 곡을 쓸 줄도 모르니 책을 읽을까 합니다. 밑줄이 넘쳐 나면 옮겨 적고 옮겨 적은 것들도 넘치면 그때는 바람이 바람이 될 줄 알 것입니다. 내 바람은 무엇이었던가 그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도 이천에 가면 산속에 신세계를 창조한 화가가 있다고 합니다. 이상일 씨라고 합니다. 미술관도 있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객실이며 레스토랑이 마련된 곳인데 자연 그대로 지은 곳이라 폭우에도 탈이 안 나더라는 이야기는 인상적입니다.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없지만 우연히 옆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가는 발명가처럼 저도 좋았습니다. 마음이 심심하다 싶은 때에 어떤 이가 자기 살아온 것을 고맙게 들려준 기분입니다. 길에 사람이 없으면 한참 잘 가다가도 의심이 드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이 길이 맞는데도 정말 맞나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 같습니다. 길을 주인공 삼아야겠습니다. 나는 내가 주인공인 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물 한 잔이 바로 그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선생님이 끝에 그러십니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에요. 항상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삶이고,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해요. 한 시간이라도 자기 정신없이 산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는 오늘도 창조했는가. 이게 내 삶의 신조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본받고 싶은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본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그만큼 저에게서 사라졌습니다. 이다음은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지우는 작업에 참여해 볼까 합니다. 그러다가 그림을 그릴지도. 그럴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요한 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