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8-1

또 하나의,

by 강물처럼

2022,0929, 목요일


앞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브레이크를 언제 어떻게 밟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브레이크 Break, 그것이 사람을 구합니다.

아침 안개가 자욱합니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안개는 자주 나타날 것입니다. 마치 미카엘 천사가 그 날개를 펼쳐 보호하는 바다, 바다 위에 섬, 그 섬에 지어진 몽생미셀 Mont Saint Michel을 직접 마주치는 날 같습니다. 스무 해 전에 오늘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람이 불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휴식 시간이었습니다. 저녁 먹을 시간이었고 평소처럼 치즈 버거나 350엔짜리 규동을 먹을까 하고 나섰는데 내가 서 있는 곳은 서점이었고 뜻밖에도 화보나 사진에 관련된 잡지들을 들추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딘가 가고 싶었던가 봅니다. 그때 몽생미셀을 처음 봤습니다. 대천사가 내린 바다 위의 수도원. 잡지 표지를 한참 응시했습니다. 저 페이지를 열면 나는 어디로 흘러갈까.




전쟁이 났다는 꿈을 왜 내가 꿨는지 황당합니다.


꿈속에서 휘발유가 떨어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모두 흰 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약수 받던 그 통들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물 대신 기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불만스러웠습니다. 불안했어야 하는데 불편했습니다. 꿈인 줄 알고 꾸는 꿈이라 그랬습니다. 저도 시절이 걱정되는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검사´를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덜 걱정하며 지낼 수 있으니까요. 호칭도 직업도 검사인 사람들은 무슨 검사를 어떻게 하며 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렇게 떠드는 것도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 같아 속으로 부끄럽습니다. 설마 하면서 내가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해야 할 ´검사´를 잘하지 못한 탓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무심했던 탓입니다. 그래서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안개가 짙어 갈 때는 바람을 기다립니다.




몽생미셀에 가지 못했습니다. 20년 됐습니다. 20년 전, 저녁을 먹지 않고 바람을 마셨습니다. 탄자니아에 있는 킬리만자로에 오르는 꿈을 서서 꾸었습니다. 여기 앉아서 커피를 마셔야지. 그때는 그게 쉬워 보였습니다. 어떤 꿈은 하루를 지내는 데 다 사용되고 어떤 꿈은 일생을 지피는 불이 됩니다. 그날 저녁이 그랬던가 봅니다. 어떤 날은 하루가 긴 날이 있습니다. 내 안에 안개가 낮게 깔리는 날이 있습니다.




지폐를 동전으로 바꿀 때도, 암호를 풀 때, 파도가 부서지는 것도, 기록을 깨는 것, 목소리가 갈라질 때도, 스캔들이 터지는 것, 법을 어기고 사람들의 사기를 꺾는 것도 모두 브레이크 break라고 합니다. Break에는 뜻이 많습니다. 관계를 끊고 끝장을 내는 것도 브레이크입니다. Break가 가장 많이 쓰일 때는 깨지고 부서지고 고장 날 때입니다.




6학년 아이가 엄마한테 알려주고 싶다고 조그마한 수첩에 적었습니다.


Break : (작업 중의) 휴식, (학교의) 쉬는 시간, (짧은) 휴가.




쉬지 않으면 고장 납니다.


거짓말도 쉬어야 하고 전쟁도 쉬어야 하고 쉴 것이 보기보다 많은 것 같은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