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30, 금요일
안개가 아니라 미세먼지라고 합니다.
가시거리가 얼마나 될까, 뿌옇게 흐린 것이 어제보다 덜하지만 저것이 미세먼지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상념에 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서로 비슷한데 그것이 일으키는 파동은 전혀 다릅니다.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면 좋을 텐데...
시시각각 찾아드는 고민입니다. 예전에는 더 심했던 거 같습니다. 세월을 어느 만큼 지나오면 요령이란 것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요령이 생겼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이 모두 해로운 것도 아닙니다. 양파 껍질을 하나 까는 것도 오래 하면 눈물이 덜 흐릅니다. 설거지는 그 대표적 예가 됩니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흘리는 물의 양과 세기는 설거지하는 사람의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 될 것입니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닦고 그것을 다른 물수건으로 헹구고 물기를 털어내는 동작 - 식기세척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거기에 없는 수많은 기능 중에 가장 빼놓을 수 없는 - 의 반복을 통해 ´나는´ 수정됩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됩니다. 마치 폭포 아래에서 도를 닦는 수도자와 같은 작은 연습이 거기에도 있습니다. 작은 것은 큰 것으로 통하고 큰 것들은 모두 작은 것을 품고 있습니다. 연결 고리를 파악할 줄 하는 것이 이치의 세계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렇습니다. 하찮은 설거지를 통해서 사람이 순해질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민은 다른 데 있습니다. 설거지도 하지 않고 좋아지기를 바라는 눈망울들은 어쩌면 좋을까 싶은 것입니다.
어떤 눈동자든 빠끔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쉬워지려고 합니다. 더 쉽게 더 재미나게 풀어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습니다. 무른 것만 씹으면 이빨이 약하고 턱도 조그맣고 연해집니다. 그런 말 들으면 혼자 웃습니다.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는 데로 시집가라´ 물론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 줄 압니다. 하지만 시대가 속뜻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혹시 눈치채셨는지요?
지금은 행간의 의미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써먹지 못할 의미이며 보이지 않고 맡을 수 없는 뉘앙스입니다. 직구를 선호합니다. 물건도 직구로 구입하고 사람도 직구로 사귑니다. 은유와 비유는 어렵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아이들도 쉽고 재미있는 것들만 찾습니다. 곧 쉽고 재미있는 것들이 아이들을 고를 것입니다. 어렵고 재미없는 아이들은 선택받지 못할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이 떨어지고 있는 현장을 목격합니다. 말은 풍부해졌는데 글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읽지 않고 들으려고 하는 것은 편하기 때문입니다. 편리의 중독성입니다. 편한 것이 좋긴 한데 그것이 진리는 아닐 것입니다. 진리로 나아가는 방향을 미세먼지가 자욱한 세상에서 잃은 것은 아닌가 짚어 봐야겠습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지 않는 방향은 누가 일러줄 수 있을지요.
모두 쉬워지면 그래서 세상도 쉬워지면 좋을 텐데, 세상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혹시 세상은 그대로인데 우리가 잃어버린 것 때문에 어려워진 것은 아닌가. 우리가 바꿔 놓은 것 때문에 세상은 혹독해진 것 아닌가. 우리는 편하자고 그랬을 뿐인데...라는 말, 어쩐지 귀에 익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