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1, 토요일
한여름에도 사흘이 멀다 하고 청암 호숫가를 찾아 아침 내내 흥얼거리면서 걸었습니다. 걷다가 춤을 추기도 했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기라도 했으면 멀찍이 떨어져서 조심했을 것입니다. 한참 걷다 보면 흥이 납니다. 프로는 아니고 아마 5급 정도 될 겁니다. 걷기에도 급수가 있다면 그 정도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그랬던 것이 코로나를 앓고 근 한 달, 거기 가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아직도 못 가봤습니다. 여름 꽃은 다 들어가고 새로 나온 가을꽃들이 벌써 한 사이클을 돌았을 것입니다. 어제는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함라산 임도를 걸었습니다. 산으로 오르지 않고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서 걸어봤습니다. 느리게 여유를 부리다가 바깥공기 쐬며 차분히 9월 마무리를 권하는 수녀님 말씀이 도르래처럼 저를 일으켰습니다.
이 좋은 것을.
사람들은 가을걷이에 들어갈 것입니다. 들판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무르익다. 고마운 말입니다.
수녀님 덕분에 제 가을 걸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무심히 지났으면 다시 일주일이 흘렀을 것이고 그러다가 시절은 가는데 시간은 여전히 바쁘다고 푸념했을 것입니다. 비가 내리거나 다른 일이 생겨 또 지체하고 미루는 일상이 반복되었을 것입니다. 지나가는 것은 매정합니다. 걷는 것인지 날아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훌쩍 사라져 버립니다. 무리를 지어 핀 물봉선을 보면서 오늘 너를 보려고 그랬구나 싶었습니다. 그것으로 다 풀어졌습니다. 몸도 풀어졌고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호연지기는 별다른 것이 아닌 듯싶습니다. 꼭 청춘이 아니더라도 내가 가벼워져서 위로 오르는 기분이 그것 아닌가 싶습니다.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위로´. 그렇지요, 그 ´위로´. 저 그거 발견했습니다.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을 위로 보는구나. 나무나 돌을 위로 보는구나. 봐야 하는구나. 거기에서 위로가 나오고 위로가 되는구나.
돌이 하나 있습니다. 망부석이라고 쓰고 기다림이라고 읽히는 돌입니다. 망부석이 뭐냐고 묻는 아이들은 귀엽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이야기해 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기다림의 자세, 길에서 만나는 스승들은 그것을 저에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지리산 둘레길에서는 돌탑 앞에서 밥을 먹습니다. 기다림을 내게 주소서. 잘 기다리게 도우소서. 올가을에는 돌로 쌓은 것들을 가서 만져볼 생각입니다. 기다림을 손으로 만지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뜬금없이 돌 이야기를 서둘러 꺼낸 것은 그게 ´위로´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저 기다림이 내 위로가 되어 나를 기다릴 줄 알게 하는, 이 풍경이 말입니다. 그깟 돌이 말입니다. 이것도 어제 걷다가 만난 생각입니다.
기회 봐서 황동규 선생과 황진이를 한 데서 만나 막걸리라도 따라가면서 ´기다린다는 것´에 대해 오래 이야기 나눌까 합니다. 어제 그렸던 크로키는 무엇으로 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손이었는지, 발이었는지, 내 두 눈이었는지, 아니면 무엇이었을까요.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도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중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시는 밤이어드란 굽이굽이 펴리라. - 황진이 시조
기다림만 잘 배워도 사람은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월급날은 더디게 오고 은행 대출금 갚아야 하는 날짜는 쏜살같습니다. 내 기다림은 어느 경계에 서 있는 돌일까 싶습니다.
공중에서 밤이 톡 떨어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