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7-1

또 하나의,

by 강물처럼


2022,0928, 수요일



가을 저녁은 식탁을 비추는 전등불에도 알싸함을 숨겨 놓습니다. 거기 앉은 사람이 누구라도 토닥거리며 위로합니다. 취하게 합니다. 오렌지, 홍시, 노을, 그리고 세월이 마주 앉은 이의 얼굴에 영상처럼 흐릅니다. 내 앞에는 작은 꼬마, 강이가 있습니다.


어제는 자기를 여전히 아기 취급한다고 아빠하고 엄마를 앉혀 놓고 떠들더니 오늘은 친구들이 자기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느냐고 선수를 칩니다.




"나 보고 긍정왕이래."




씨앗에게 한 번쯤 행운이란 것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마도 ´자리´를 고르는 데 그것을 쓸 것입니다. 자리가 정해지면 거기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계절이 하염없이 지나갑니다. 그렇게 자리는 씨앗을 키우고 씨앗은 자리가 됩니다. 둘이었던 것이 하나가 되는 공간, 세상은 바로 거기입니다. 세상은 엄마의 뱃속입니다. 아직도 나를 키우고 나를 살리고 있습니다. 물과 엄마의 양분이 흐르고 엄마의 기억을 공유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 뱃속에서 가을, 그것도 저녁에 불을 밝히고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나는 씨앗이 될까, 자리가 될까 잠시 눈을 깜박였습니다.




저 아이와 나는 마흔 해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습니다. 나를 낳고 마흔 해가 지나서 저 아이를 낳았습니다.


세상이 엄마처럼 옆에 앉으면 나는 씨앗이 되기로 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무엇이 됩니다. 씨앗이었다가 자리였다가 엄마였다가 아이였다가 세상에 나왔다가 뱃속에 들어갔다가. 오늘은 내가 씨앗, 너는 자리가 되어라. 내일은 내가 그 자리가 되고 너는 나 대신 씨앗이 되기로 하자. 마흔 해 전의 나야, 아니지 오래 전의 세상이었으며 지금이고 또 먼 내일이 되는 너야.




"강이야, 아빠가 부탁 하나 할까?"




내 말이 끝났던가 아직 다 말하지 못했던가 그랬을 때, 저 조그만 것이 자꾸 이해한다고 그러는 것이, 밟혔습니다.


안다고 그러면 쉬울 것 같은데 이해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좀 어려워졌습니다.




"나 그때 기억나. 이모네 집에 오빠하고 있으면서 엄마 언제 오냐고 울었잖아."




그때 강이가 7살이었으니까, 다음 말을 ´벌써´ 그러면서 자리에 앉으려다 다른 자리를 찾았습니다. 지금이 좋아 보였습니다. 지금이라는 자리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우리 많이 걸었고 같이 밥 먹은 것만 해도 얼마나 많아. 그렇지?"




아빠는 그것이 고맙다고 그때 우리가 이별할 수 있었는데 더 살 수 있어서 강이 공부도 봐주고 학원에도 태워다 줄 수 있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고 일러줬습니다. 세상에는 배울 것이 참 많아서 좋다는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은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에 가을 편지라는 형식의 편지를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넘치는 감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는 젊은 청춘이 아닙니다. 고마운 것이 많아서, 언젠가 긴 편지를 쓰고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었던 음악 방송입니다. 오늘도 그 편지는 적지 못하고 내 가장 약하고 아름답고 기특한 부분을 보여드립니다. 딸아이는 내가 켜놓고 지내는 세월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그 세월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감동합니다.




"나중에 나중에 혹시라도 아빠를 더 못 보게 되면 하루만 울고 다음 날부터는 웃는 거야."




FM에서 흘러나오는 Chris Spheeris의 Carino를 듣는 오늘 같은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행복해집니다.


아빠인 것이 좋아집니다.


가을바람이 달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