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점심 드시게요 11

위대한 위

by 강물처럼



연말이면 모두들 송년모임으로 바쁩니다. 모두 수고했다며 그날은 일식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일식이란 것이 아기자기하니 보기에도 좋습니다.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다들 반가워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그러면서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날 것은 먹지 마세요!' 그랬던 의사 선생님의 충고와 '수술하고 1년 반이나 지났으니까'라는 궁색한 내 변명이 나란히 제 옆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둘 사이에서 빈 젓가락질만 했습니다. 생선회를 좋아하면서 그 옆에 시금치만 집어 먹다가 결국,

"어? 여기는 왜 이거 안 먹는 거야?"

그 말과 함께 엉겁결에 회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습니다.

그 맛이란 게 사람을 참 괴롭힙니다. 좋아하는 것을 먹을 때 누구나 행복해집니다.


'어차피 하루 세 끼 먹고 사는 것인데'

사는 일은 먹는 일입니다. 잘 먹는 것은 잘 사는 일이기도 합니다.

위가 없으면 잘 먹을 수 없습니다.

그날 오랜만에 먹는 생선회가 맛이 좋아서 서너 번 집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1주일은 고생했습니다. 철저하게 깨닫게 해줬습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살지 마라'

메시지는 단호했습니다.


사람의 멋은 이런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진하고 또 잘 잊어버리는 존재, 두려움을 잊고 다시 나서는 것입니다.

처음엔 당황스럽던 것도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사람입니다. 하지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길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은 채워지지 않으면 화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것이 욕심인 줄 알아야 자기가 살 수 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무슨 욕심이냐고 되묻는다면 그것은 욕심이 맞다고 말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돕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도울 사람은 없습니다.

통증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짜증나는 얼굴을 하고 살아갈 수도 있지만 평화로운 표정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얼마간의 통증을 안고 산다는 뜻입니다. 통증이 없는 시간을 잘 살아가면 됩니다. 그 시간도 충분히 많습니다. 통증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지만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생선회를 못 먹는다고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행복이란 것이 그렇게 물렁한 것이 아닙니다.


위는 사람을 위해 정말 열심히 애써주는 친구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먼저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갑니다. 위에서 십이지장이라고 부르는 소장을 거쳐 대장을 지납니다. '소화'라고 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Stomach 는 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즐기다, 참다, 견디다, ‘먹을 수 있다’라는 의미도 함께 있습니다. 먹을 수 있고 먹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위가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참고, 견디는 뜻이 거기에 있는지 알겠습니다.

우리 입으로는 평소에도 많은 세균들이 들어옵니다. 음식을 통해서도 물론입니다.

위는 그러한 각종 세균들을 죽이거나 작용을 방해하는 역할을 위산이 수행합니다.

아마도 내가 생선회를 먹고 1주일 넘게 고생했던 것은 그 무기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가능한 수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수저로 떠먹는 밥은 생각보다 양이 많습니다. 그것을 삼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 밥을 빨리 먹는 편이었다면 일부러라도 적게 입에 넣고 오래 씹어서 삼켜야 합니다. 음식을 죽처럼 만들어서 저장하는 위가 없는 사람은 입안에서 그 작업을 대신 해야 합니다.

음식을 죽처럼 만드는 일은 소장과 대장을 돕기 위한 겁니다. 위의 맨 끝은 괄약근으로 되어 소장이 받아들이기 편하게 조금씩 나눠서 내려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음식을 아무리 입에서 오래 씹었다고 해도 바로 소장으로 내려가는 양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문제이지만 위 근육이 연동운동을 하며 음식을 넘겨주기에 얹히는 일이 적습니다. 그 덕택으로 소장 입구에서 먹은 것이 얹힌 상태라면 저절로 체증이 풀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가 없으면 그대로 정체되고 맙니다. 정체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이것은 쉽게 경험하는 불편입니다.


‘덤핑증후군‘이란 게 있습니다. 이것은 증상입니다. 음식을 먹고 나서 후에 몸으로 느끼는 증상입니다. 소화하고는 별도로 일어나는 증상입니다. 몸 안에서 생리학적인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덤핑증후군이 일어나면 사람이 살짝 실제에서 분리된 느낌을 갖습니다. 급히 피곤해 집니다. 몸에서 미열이 나면서 흔히 말하는 '당糖이 떨어진' 상태가 한동안 지속됩니다.

문제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화를 하고 있거나 책을 본다거나, 뭔가를 생각해 내야 하는 시간이라면 좀 곤란합니다.


먹는 음식의 종류와 양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 부분은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술을 마셨던 사람이 술을 못 마시게 되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가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입장이 달라서 못 먹는 음식이 많아지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음식의 양인데 결국 한 번에 적당량을 채우지 못하기에 여러 번 나눠서 보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어떤 불편함이라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져야 합니다. 불평하기로 하면 끝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살아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적어 놓은 일이 나의 넋두리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처음 이런 상황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걱정과 불안으로 흔들릴 때, 길안내가 되길 희망합니다.

오늘도 나는 양말을 신고 잤습니다. 지금이 4월입니다. 예전에 나는 찬물이 무섭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수영도 좋아했고, 설거지도 능숙했습니다.

위가 없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내연기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유로베다라고 인도 전통의학에 관한 책을 보다가 아연실색하였는데, 그쪽에서는 '위'를 위대하게 여깁니다. 위는 음식물을 소화시키면서 열을 내고 그 열을 온몸으로 전달합니다. 에너지를 만드는데 열이 발생하는 겁니다. 그래서 몸이 따뜻해야 합니다. 그래야 면역력도 높아지고 기분도 좋아집니다. 위가 없다면 몸이 많이 차가울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이나 양손을 주물렀는지 모릅니다.

이것들이 내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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