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8-1

꿀꽃이었다

by 강물처럼

2022,1012, 수요일


고마운 일입니다.

아침 문장에 포개져 도착하는 시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감동이 순간으로 꺼지지 않고 오래 전달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히말라야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베이스캠프를 설치합니다. 일종의 근거지 같은 천막을 설치하고 한 걸음씩 정상을 향해 전진합니다. 먼 곳, 높은 곳, 험한 곳을 오를 때에는 한꺼번에 시도하지 않습니다. 내 몸이 상황을 따라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몸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곳,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피신할 수 있는 곳이 베이스캠프입니다. 이런 말 어떨까 싶은데, 시는 어떤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하나의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그럴 수 있느냐 물으면 오히려 그렇지 않으면 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 편의 시 때문에 가던 길 돌아섰던 적 있는지, 먼저 일어나 쌀을 씻었던 적은 있는지, 우산을 건네준 적 있는지, 대신 차비를 내준 적은 있는지, 밥을 굶고 저녁을 기다린 적은 있는지, 오릿 길을 십 리까지 배웅한 적이 있는지 그런 말들을 대신 물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시도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이미 늦었다는 말을 입에서 꺼내는 현실에 아연실색합니다.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여기는 어디인가 싶습니다. 저 또한 늦었다는 그 헛된 탄식을 얼마나 쏟아냈던가, 참 미안한 일입니다. 6년 전 수술을 끝내고 다음 날 눈을 뜬 아침에 그 마음을 먹었습니다. ´늦지 않기로. ´


정말 늦어서 늦어버리기 전에 어떡하든 움직여야 할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몸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내 걸음대로, 베이스캠프에서 몸을 다스리면서 다른 쪽으로 걸었습니다. 그때 제가 처음 본 것이 무엇인지 아실까요. 사랑이나 정성, 헌신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8월 한여름에 피어있는 보라색 꿀풀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기한 것도 없는 꿀풀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를 처음 본 것은 아닌데 처음이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때부터 잘 보고 싶었습니다. 못 본 것들과 모르는 것들, 보이지 않던 것들 말입니다.




아침 기도 시간이 다 됐습니다.


조금 일찍 서둘렀어야 했는데 제가 좀 늦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깃발을 꽂아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