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19-1

옭아매려고

by 강물처럼

2022,1013, 목요일


맑고 향기롭게,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텅 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서 있는 사람들.

이렇게 다섯 권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법정 스님의 책입니다. 스님은 더 가지지 말라고 하셨는데 더 챙기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나마 있는 이 다섯 권을 아끼고 있습니다. 가을인가 봅니다. 가을에는 꼭 한 번씩 손때를 묻히고 싶은 것이 마치 정을 주는 것 같습니다. 책이 사람처럼 다사로운 것이 가을이 건네는 넉넉한 신호 같습니다. 서둘러 뛰지 않아도 되는 그 신호 말입니다.




서 있는 사람들 - 1988년 1월 25일 중판 발행, 지은이 法頂, 펴낸 곳 샘터사, 값 2,800원.


일본 책처럼 세로 읽기로 되어 있습니다. 나를 알 것 같습니다. 30년을 곁에 있었으니까요. 그런 것이 사랑인가. 떠나도 괜찮다 싶을 때 떠나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습니다. 내가 불안해서 책들이 지키고 앉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헐거워지고 낡고 바랜 책들을 내가 업어줄 차례입니다. 거기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




오래되고 지켜본 것들에 대해 읽었습니다. 소개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한 줌의 흙이 되었지만 묵묵히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명체가 있다. 당시 창경궁에 자라고 있던 고목나무들이다. 특히 선인문 앞의 회화나무는 비극의 처음과 마지막을 모두 지켜봤다. 정문인 홍화문에서 궁궐 담장을 따라 10여 미터쯤 남쪽으로 내려오면 규모가 훨씬 작은 또 다른 출입문이 하나 있다. 지체가 낮고 궁궐의 여러 가지 잡일을 담당하던 하급 관리들이 주로 이용하였던 문이다. 아울러 임금의 미움을 받아 궁궐에서 죽음을 당했을 때 시신이 나가는 비극의 문으로 사도세자의 주검도 마찬가지였다. 문의 안쪽 금천에 걸친 작은 돌다리의 늙은 회화나무가 바로 그 나무다. 당시 쉰 살 남짓했던 이 나무는 1830년경에 궁궐의 전각과 나무를 상세히 그린 동궐도에서도 만날 수 있으며 나이는 삼백 살쯤 됐다. 박상진, 나무 탐독에서.


<네이버 이미지>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나무는 책입니다. 살아서도 책이고 죽어서도 책입니다. 책은 나무를 키우는 책이며 또 나무입니다. 사람은 나무 같아야 보기 좋습니다. 법정 스님이 그렇고 회화나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을 탑니다. 타고 싶습니다. 거기 올라타서 멀리 가보기로 합니다.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루카 11:54




2천 년 전에도 그동안에도 그리고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사람들은 그러려고 그럴 것입니다. 옭아매려고 노릴 것입니다.


가을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고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쩌겠습니까. 금방 가고 마는 것이 가을인 것을, 아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