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8, 화요일
52와 4분의 1, 이것이 내 나이야.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난 강이에게 외국 사람들이 생일 적는 법을 알려줬습니다. 52년 3개월 됐다는 거야. 끄덕이며 새로운 것을 알았다며 좋아합니다. 그것이 이해 理解야. 네 안이 풀어져서 홀가분한 것이야. 그런데 봐봐. 지금 단풍이 막 들려고 하고 대추며 감이 익어가고 있지? 저번에 강가에 가서 코스모스 사진 찍고 그랬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생각해 봐. 그 느낌하고 방금 이해했다는 느낌 하고는 어때? 나는 코스모스나 꽃, 풀잎 같은 것을 보면 ´너를 이해해´ 그렇게 말하지 않거든. 아이가 웃습니다. 그지? 너도 감나무야 너를 이해한다. 여기 책상아, 너는 좀 이해가 안 된다. 하늘아, 정말 이해가 잘 된다. 그렇게 말하지 않잖아. 아이가 더 활짝 웃습니다.
도움을 받는 거야, 그러려고 공부를 하는 거지, 그래서 책 읽고 사람들 만나고 직접 걸어보는 것들, 그게 다 공부가 되는 거야. 학교나 학원에서만 하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공부 중에서도 제일 재미없는 편이지. 누구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조금 위험한 구석이 있어. 물론 기본적으로는 좋지,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이해할 때 understand라고 하잖아. 나는 그 말도 참 멋있는데 내가 너를 이해하려면 강이, 너보다 아래에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거잖아. 아빠가 너 업고 다녔을 때 기억나? 또 웃는다. 그런데 살살 고개를 흔든다. 컸다.
나는 너를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아. 가볍고 조그맣고 떨리는 심장 같은 거, 눈동자 같은 거, 생명 같은 것이 느껴졌어. 자, 여기가 좀 달라지지? 좀 전에 이해했던 부분하고 살짝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지? 이해가 공감으로 번져가기 시작하는 지점이야.
공감 共感은 말 그대로 sympathy라고 그러거든.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그게 잘 보이는 것이 공감이야.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내가 풀이어도 상관없지, 아니 마구 풀이 될지도 몰라. 너무 풀이 되어서 풀 같아지는 자신이 무서울 정도야. 그래서 울 수도 있는 것이 감수성 感受性이고, 둘 다 ´감 感´이란 글자를 갖고 있어. 우리가 감정이라고 할 때, 그 감이야. 이번에는 웃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러는 거 들어 봤지?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거울 아래에서 본 적 있다고 그럽니다.
그 말이 어떤 말 같아?
힘드니까, 힘들 때는 포기하지 말고 참으면 다 지나가니까, 이겨내라고 그러는 거잖아.
아빠가 요즘 하늘이 좋다는 말 자주 하지?
저번에 둘레길 걸을 때도 이렇게 좋은 날이 그냥 가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아빠는 몇 날 며칠이고 걸었으면 좋겠다고 그랬잖아.
오빠하고 너는 절대 싫다고 그랬고.
아빠는 이 말을 그렇게 기억해.
이 좋은 날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말을 맺었습니다. 말을 덧붙이면 나사를 조이고 부품을 끼워 넣는 일 같아서 다 고치지 않은 상태로 돌려줬습니다. 아이가 만들어 봐야 할 몫이 더 소중했습니다. 개성을 잃어간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저도 그것이 무엇인지 낯설기만 합니다. 무리에 맞춰서 어울리는 일이 흥미롭지는 않지만 덜 위험합니다. 심심해도 위험한 것은 질색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또한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그 마음도 이해를 합니다. 이해하면 편안합니다. 공감은 ´또한´ 그 글자에 있습니다. 분리가 아니라 하나, 연잎에 맺힌 이슬이 서로 엉키는 모양이 ´공감´ 아닌가 싶습니다. 나도! 그러는 것처럼 말입니다.
먼저 이해하고 그리고 공감하면서 이 말 건넬까 합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