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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05. 2023

기도 86-1

관련 없음

2023, 0105, 목요일



가령 이런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나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다. 벽돌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역사를 자랑하는 듯한 대학 교회 건물 앞에서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건물은 높은데 나는 작았다. 내가 나를 더 작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스탠퍼드´라는 이름이 내 안에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만 적었는데, 그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물론 ´이렇게만´ 적었다고 했지만 그 순간에도 어떤 것들이 ´작용´했는지는 정확히 판별할 수 없습니다. 당사자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묘해지는 부분입니다. 그림을 복원하는 일처럼, 옛날 문화재를 다시 살리는 작업처럼 감쪽같이 속을 감추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많습니다. 사진도 그렇고 연애도 그렇고 회사나 학교, 학원도 거기를 좀처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관계가 그런 분위기 위에 성립이 되면 항상 긴장하고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과 겉과 속이 같은 것은 어느 쪽이 본질에 가깝습니까.




그러니까 제 말은, 저렇게 적어 놓으면 어떤 사람은 스탠퍼드에 갔었는데 그랬던 적이 있었나 보다 그러고 어떤 사람은 스탠퍼드를 다녔었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기 친 사람도 나쁘지만 사기당한 사람도 꼭 불쌍한 것은 아니라고 할 때 바로 이 지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불쑥 미끼를 잡아채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 사람들을 낚시꾼들은 놓치지 않습니다. 부러움과 시샘, 질투 같은 것들이 미끼가 품고 있는 냄새와 색깔, 맛이며 모양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스탠퍼드에 다닌다고 한 적 없는데? 이 말은 늘 한 걸음 늦게 현장에 도착합니다. 사달이 나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뭐에 홀렸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부러워하는 것들은 중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어른, 아이 누구라도 거기에 발이 빠질 수 있습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몸이 다 빠져들었는데도 모르는 경우입니다. 종교도 신앙도 봉사도 책임도 희생도 과연 거기를 어떻게 다룰까 싶습니다. 파고드는지, 스며드는지, 아니면 흘러나오는지, 축축하게 배어 나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프지 말아야 합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묻습니다. ´더´ 그리고 ´더´ 게다가 ´더´ 그 밖에 ´더´ 한 번 ´더´, 그래서 내가 부풀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들리고,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그렇게 보입니다. 나는 그것을 ´더 증후군´이라고 할까 합니다.




법무부 장관 딸이 스탠퍼드에 수시 합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내가 걸어본 스탠퍼드는 매혹적이었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무며, 도로며, 학생들, 심지어 서점에 깔려 있던 붉은 카펫까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초라하면 더 멋져 보이던 것들, 아무 말 없던 그것들을 다시 돌려주고 싶습니다. 있던 자리에 그대로 가져다 놓고 싶습니다.




누가 글을 잘 써도 덜 부러워할까 합니다. 누가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더라도 덜 들여다보고, 누가 비싸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있어도 곁눈질하지 않기로 합니다. 비싼 차, 넓은 집, 높은 사람들에게 그만 혀를 내두를까 합니다. 건강하고 가질 것 가지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에게도 고개를 덜 숙일까 합니다. 이제 저도 쉰 살이 훨씬 넘었으니까요. 그것들도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겠습니다. 아버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딸까지 그렇게 보지 않기로 합니다. 공부를 안 한다고 미워하거나 화내지 않을 것, ´덜´ 그러겠다고 적어봅니다. 더하고 덜할 것에 대한 판단이 잘 서야 시야가 흐려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내 중심이 흐트러지면 넘어지기 십상입니다. 잘못 넘어지면 일어서기도 어렵습니다. 내가 서 있는 지점이 가끔 편안할 때가 있습니다. 바람이 시원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부러워하지 않고 나를 가엾게 여기지 않는 곳에서 꽤 자유롭습니다. 색을 지우고 향을 지우고 맛을 지우는 연습은 어떨까 싶습니다. 물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 참고로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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