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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06. 2023

기도 87-1

이동하는 길에서요

2023,0106, 금요일



무대를 장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신구 선생님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만나는 그분 맞습니다. 사람이 커 보이는 느낌이 확연했습니다. 목소리도 심지어 그 사람이 지닌 기운마저 다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공간의 공기는 저 한 사람이 다 들어마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지붕을 받쳐 든 기둥 같았고 호수 위에서 새끼들을 이끌고 앞서는 어미 오리 같았습니다. 나는 그 뒤를 쭉 따라다니며 물장구치고 싶었습니다. 어디에서 언제 무슨 연극이었는지, 다 잊었지만 분장을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웠던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그 밖에도 많은 훌륭한 연기자들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박정자´


연극을 전혀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 혼을 쏙 빼놓고 가버리십니다. 200편 이상의 연극을 평생 하셨다는데 두 편인가 겨우 봤습니다. 내 삶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사실입니다. 국민학교 다닐 무렵, 집에 따로 욕실이 없어서 공중목욕탕에 다녀오는 날 - 특히 설과 추석, 양 명절을 앞두고 - 속으로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돈을 모아서 목욕탕에 자주 와야지!


입에 먹을 것을 먼저 챙기느라 목욕탕까지 다닐 엄두가 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훌쩍 커버렸습니다. 사우나를 아무 때나 들락거릴 수 있지만 ´목욕탕´은 이제 없습니다. 내가 ´천국 같다고´ 좋아했던 그 목욕탕은 막을 내렸습니다. 연극이 끝났습니다.


저분은 방금 연기를 한 거야, 아니면 내가 지금 무슨 꿈속 같은 데를 다녀온 거야.


속삭임이면 속삭임, 외침이면 외침, 눈빛 하나도, 흔들리는 드레스 주름까지 모두 일체가 되어 그녀의 연극을 도왔습니다.


왜 더 찾아다니며 살지 못했을까.


사는 데 욕심나서 그랬습니다. 욕심낼 것도 없었던 것을 아등바등 사느라 다 못 보고 지나버렸습니다.




작년에 못 보고 지나버린 연극, ´두 교황´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10월 30일까지 연장 공연을 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나는 아이들에게 그 부분이 슬쩍 미안합니다. 연극을 본 적도 없고 상상만 합니다. 어쩌다 서울 한번 가는 것도 병원이나 친척 집에 찾아가느라 시간이 빠듯한 것이 미안합니다. 내가 놓친 것들을 아이들은 챙기면서 살기를 바라지만 내 삶의 영역 안에서 아이들이 머무는 동안에는 부족한 대로 부대끼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도 삶이라고 잘 이야기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결핍이 안에 들어 있는 빵이야말로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내가 ´목욕탕´을 늘 동경하는 것은 그 맛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날마다 조금씩 행복해질 거라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좋은 것에는 ´좋아하는 마음´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좋은 것이 더 좋아집니다.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욕심이 아니라 동경,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리는 꿈, 그리고 좋아하는 마음, 그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치는 누가 정하는 것이 맞습니까. 나는 몇 등급입니까.




후임 교황과 전임 교황이 함께하는 ´두 교황´의 시대를 열었던,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교황님의 평화로운 안식을 빕니다.




이혼, 낙태, 피임, 동성애뿐만 아니라 기후, 난민, 빈곤 같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생겨나는 모든 문제들이 가톨릭 안에서도 산적해 있습니다. 사제들의 잇단 성추문은 교회에게 큰 고통이 될 것이며, 전쟁이 없었던 시대가 없었던 것처럼 평화와 사랑을 전하고 실천해야 하는 그 숭고한 임무는 과연 중단 없이 계속될 것인가. 교회는 스스로 부패와 권력 투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과연 생명은 복제되는 것이 옳은가. 많은 가톨릭 신자들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희망을 바라보듯 교회 첨탑을 올려봅니다.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과연 세상을 도우며 나란히 걸을 수 있을까.




영화라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겠습니다. 두 교황님의 대화를 소개하면서 아침 묵상을 마칩니다.




¶ "타협한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입니다. 삶은 본래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움직여 다닌다면 신은 어디서 만나나?"




"이동하는 길에서 마주치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말 한마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모두의 잘못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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