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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04. 2023

기도 85-1

나를 키운 노래들

2023, 0104, 수요일



멜로디가 좋아서 흥얼거리다가, 계속 거기에 빠져 살다가, 어느 날은 그 가사를 한 줄씩 적어보는 노래들. 시가 된 노래들, 노래가 된 시들. 서정주 시인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는데 나는 어디에 업혀 컸을까.




¶ 소리 내지 마/ 우리 사랑이 날아가 버려/ 움직이지 마/ 우리 사랑이 약해지잖아/


얘기하지 마/ 우리 사랑을 누가 듣잖아/ 다가오지 마/ 우리 사랑이 멀어지잖아/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나는 너를 보고 있잖아/ 그러나 자꾸 눈물이 나서/ 너를 볼 수가 없어/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우린 아직 이별이 뭔지 몰라/ 1989, 11월 이승철,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혼자 있을 때 나를 퉁기며 흘러나오는 노래들이 내 정체성 같은 거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에 이별 노래로 잔뜩 취한 청춘이 아니었던가 싶어, 살짝 무안해집니다.




아하 A-ha가 불렀던 Take on me, 토토 ToTo의 Africa, 영기가 좋아했던 듀란듀란, 창기가 좋아했던 영화 라붐의 Reality, 수덕이는 비틀스의 let it be, 우리가 좋아했던 사이먼과 가펑클.


나에게 노래라는 세상을 알려준 사람은 영기였습니다. 조영기 베드로.


카세트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반가웠던가. 영기가 듣는 노래를 옆에서 듣고 영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서 좋아했던 12살, 13살, 14살, 15살이었습니다. ´산울림´의 청춘, 회상을 듣고 우리는 쓸쓸한 것 같은 맛을 배웠습니다. 이쯤이면 됐나, 마치 막 시집와 밥을 짓는 새색시처럼 자꾸 뚜껑을 열어보며 우리는 어떤 감상 같은 것들을 익혔던 거 같습니다. 감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것들, 설익어서 풋내가 나도 좋았던 열매들.




지금은 어떤 노래를 듣고 있는지.




엊그제는 꿈을 꿨습니다. 새해 첫날 꾸는 꿈은 어느 나라든 중요하게 여기는데, 예를 들어 일본 사람들은 꿈에 후지산을 보면 그해는 운수 대통이라고 여깁니다. 가만 보니까 세월이 가는 만큼 보고 싶은 사람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것이 그리움이 깊어진다는 것. 내가 일했던 곳에 매니저, 내가 텐쵸라고 불렀던 그분이 아무래도 그리운 것 같습니다. 지금은 홋카이도 어딘가에 살고 있을, 이름만 알고 있는 사람. 꿈속에서도 반가웠습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이 두 마디가 동시에 나오는 인연들에게는 늘 내가 부끄러워집니다. 아마 그 이름을 잊지는 않을 것입니다. 찾지는 못해도 잊지는 않는, 그래서 더 쓸쓸한 노래, 삶은 자기 노래를 하나 짓는 일인 것도 같습니다.




그때 나에게 정말이지, 친절했던 동경 여자 미술대에 다니던 여학생은 또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주책입니다. 새해에.


그러나 생각이 많이 납니다. 고맙고 고맙고 고마웠던 그리고 미안했던.


아, 그런 순서들이 있었다니!


미안한 것이 어디, 몇 번째에 들어가냐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보이는 인연들.




아이들 졸업식에 가면서 나는 내 졸업을 떠올릴 것입니다. 나는 졸업을 했었나. 과연 졸업을 한 적이 있었나.


훗날, 내가 나를 떠날 때에는 어떤 노래를 불러줄까. 누구 노래가 좋을까.




일본 친구들을 만나면 나고리유키なごり雪를 부릅니다. 나는 그 시절에 살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잘 부릅니다. 노래를 잘 불러서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한바탕 놀다가 잠시 숨을 돌이킬 때, 내가 트는 노래입니다. 나고리유키는 다 녹지 않고 봄이 오는 날까지 한쪽 구석에 쌓인 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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