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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4. 2023

기도 93-1

내 마음은 편안하다.

2023,0114, 토요일


¶"주교님이 처음 소개한 곳은 ´어린이집´이었죠. 거리에서 구걸하는 여자아이들을 돌보며, 그들과 먹고 자는 일이었는데, 행복했어요. 완전히 부서진 가정의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지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이 우리의 성소라고 생각했죠."




예수회선교수녀회 소속인 그는 인터뷰 내내 힘든 봉사 여정을 이야기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행복하다"는 말을 접속사처럼 이어갔다. - 2015.11.26. 연합뉴스 기사, 콜롬비아 ´노숙자의 어머니´ 유위숙 수녀에 대한 기사 일부




나는 그분을 본 적 없습니다. 그분에 대해 듣지도 못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휴대폰 알림이 울렸습니다. 내가 써놓은 메모가 보였습니다.


´유위숙 스콜라스티카 수녀님 2주기, 대구 대명성당´




자격은 없지만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낯선 땅에서 봉사하셨던 수녀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입니다. 수녀님의 복된 안식을 빕니다.




2018년 돌아가신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의 애도 일기를 펼쳤습니다. 그해 7월 어느 날에 쓴 일기입니다.




¶ 아침부터 세우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산책을 한다. 걷다가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잿빛이다. 그래서 더 멀고 더 깊어 보인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흔히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얼마나 숭고하고 성스러운가. 하늘로 가는 건 승천이다. 승천은 성자만이 한다. 우리는 마지막에 모두 성자가 되는 걸까.




처음부터 읽기가 힘들 것 같아서 맨 뒤를 펼쳤습니다. 그리고 뭉클했습니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따로 인용부호를 찍지 않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정말 마지막에는 온점, ´마침표´가 찍혀 있었습니다. period. period. period*.


삶은 무수한 시간, 그 시간들은 사람들에게 와서 기간이 되고 세월이 되고 계절이 됩니다. 몇 개의 period들을 다 지나서 마주치는 점. 그 period를 찍게 됩니다.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은 순간순간 저를 움켜잡았습니다. 손아귀 힘이 억센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상처 나지 않게 흔들 뿐이었습니다. 마치 파도가 바다를 상처 내지 않듯이, 바람이 허공을 베어내지 않는 것처럼 나를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울음을 샹송처럼 들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지만 슬픈 것을 만졌습니다. 해명 海鳴이 가득한 소소기*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가 정해졌습니다.


자기가 원했던 학교가 게시판에 보이자 환호성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학교에 가야만 하는 아이들도 생겼습니다.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로 뭉쳐 사는 것 같았습니다.


불과 5분 전에 주위를 덮고 있었던 긴장감과 바람과 기도와 하느님은 홀연히 다 날아갔습니다. 시끌벅적해졌습니다. 전화를 걸어 다른 친구들의 소식을 묻느라 바빴습니다.


한껏 들뜬 아이들을 놔두고 창가에 서서 먼 데를 바라보았습니다. 안개가 무척 짙은 날이었습니다.




´이 기분을 놓치지 않고´


학교 잘 다니자,라고 말해줬습니다.


아이들이 ´네´ 그랬습니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그와 같이 태어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 period - 명사 : 기간, 시기, 시대; (개인의 인생에서 특정한) 시기, 마침표



* 소소기 - 소설의 주 배경이 되는 마을, 일본 이시가와 현 오쿠노토에 있는 작은 해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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