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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5. 2023

학교 배정

아빠가 쓰는

1월 13일 오후 2시, 중고등학교 배정 발표가 있었다.


3년 전, 산이는 1 지망으로 쓴 학교에 붙지 못하고 다른 중학교에 배정되었다. 그날 아이가 어떤 표정이었던가, 다 잊었다. 사실 다 잊지는 않았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점점이 박힌 빛들이 있다. 구슬처럼 빛나던 것들, 서운한, 체념한, 그럴 수 있을까 싶은에서 그럴 수 있다는 쪽으로 옮겨가던 빛. 나는 그때 산이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내가 말한 것은 과연 무엇이 되었을까. 거기도 좋아, 그랬던가. 거기가 좋아, 그랬을까.


우리는 선택하고 선택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푼다. 나는 그것이 공평했다고 어느 정도 믿는다. 산이는 3년 동안 학교를 잘 다녔다. 아침이면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고 갔으며 친구가 생기고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아마 걸어 다닌 적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 아는 분이 지나다가 봤다면서, 산이는 친구들이랑 실컷 웃느라, 그렇게도 재밌게 보이더라는 말이 종소리처럼 울린다. 나도 나섰다. 1학년 3월, 4월을 내가 태우고 집에 왔으니까. 그 공터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멀쩡한 공터에서 접촉 사고를 내기도 했으니까, 어떻게 잊을 수 있나. 우리의 날들은 한순간도 빈칸으로 남지 않고 열심히 지나왔다. 띄어쓰기를 하면서 문장 부호도 지키면서 묻고 답하고 감탄하면서 문제를 풀고 가능성을 키웠다. 나는 그래서 더 기쁘다. 내가 졸업을 한 것처럼 가볍다. 산이는 중학교를 유쾌하게 마쳤다.

6년 전은 언제냐, 그 시간이 까마득한 것은 내가 소중하게 살았던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살지 못할 것처럼 시간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절이다. 강이가 8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나는 졸렸었다. 자꾸 졸음이 와서 밖에 잘 나가지 않았고 틈만 나면 누웠다. 수술을 받고 반년쯤 지났지만 기운이 영 나지 않았다. 옷이 다 헐거워졌으니까, 커피색 코트를 입고, 그래 난 허수아비 같았을 거야, 그때는 마스크도 끼지 않았으니까, 광대뼈는 큼지막하고 눈은 얼마나 휑했을까. 그러고서도 입학식이 끝난 1학년 교실을 오랫동안 보고 있었다. 밖에서, 나는 늘 밖에 서 있었다. 비는 몇 번이나 왔던가. 우산을 들고 뛰어가서 우산이 별처럼 떠있는 정문 앞에서 계단을 내려오는 아이를, 보고 보고 보고 보고. 저기 가방을 예쁘게 메고 천천히 웃고 있는 아이에게 우산을 건네면서 나는 촉촉한 것을 배웠다. 비가 와서 좋은 것들, 그 맨 위에 '강이에게 우산을' 그런 날들이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몇 반이 되고 선생님은 누구며 친구는 어떤지, 그 모든 것들은 내게 걱정이었을까, 즐거움이었을까. 나는 그 숙제가 제일 좋았다. 강이라는 책을 들여다보는 숙제가 날마다 재미있었다. 우유 당번이라서 늦었다며 숨 가쁘게 뛰어올라 수학 학원에 가고, 피아노는 끝까지 배우고 싶다며 빠지지 않고, 너는 옹알거렸다. 나는 심심하지 않았다. 6년이 건강했다. 모든 날이 나무가 자라는 시간이었다.


강이도 오빠처럼 처음 쓴 중학교가 아니라, 오빠가 다닌 중학교에 간다. 나는 나쁘지 않다고 또 생각한다. 다시 그 길을 달릴 것도 반갑다. 버스 타고 다닐 거라는 강이도 좋고, 태워달라는 강이도 좋다. 다 준비가 되었다. 벌써 한 번 해본 것인데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웃길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여유로우면 재미있으니까, 너를 웃기고 말 것이다.

가고 싶어 하던 고등학교에 배정받은 산이는 이제 큰 언덕을 오르는 길에 들어서겠구나. 내가 산을 오르는 방법은 한결같다. 걸음마다 언덕이고 능선이며 골짜기, 걸음마다 바위이고 물이며 바람, 나는 늘 정상에 서 있으며 그것은 항상 처음이다. 힘을 낸다, 보고 싶은 것들을 보러 간다. 힘들면 쉬고 그러다 괜찮아지면 일어서고, 일어선 김에 펼치고 펼쳐서 안아보고 안고서 가는, 길. 너는 목이 말라라. 열기에 마르고 바람에 말라라. 발이 아파라. 너 때문에 아프고 사람 때문에 아파라. 심장이 뛰어라, 두려움으로, 용기로, 고통으로, 환희로. 그래서 모두 사랑해라. 아까워해라. 아껴라.


나는 다시  그날에 가서 기다릴지도 모른다. 산이야,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고맙다는 말과 강이야 금세 세월이 또 갔구나. 고등학생이 되는 너는 많이 성숙해졌다. 아빠가 이제 아기처럼 대하지 않을게. 우리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아빠는 점점 젊어지는 것 같아서 큰일이다, 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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