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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6. 2023

기도 94-1

엄마 같은 말, 아주머니

2023, 0116, 월요일



누가 저더러 아저씨 그러면 달갑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 것도 아닙니다. 지천명을 지나서는 일부러 연습하는 호칭이 있습니다. ´선생님´ 하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자분을 부를 때 살짝 그것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여사님´ 그러려고 하는데 아직은 입에 익숙하지 않은 편입니다. 예를 들어,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고사리 밭에서 일하시는 분을 만나면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그러고 싶지, ´여사님´ 소리는 영 어색합니다. 호칭도 상황과 때에 맞춰 알맞게 사용해야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돕습니다. 한동안 그런 걱정 없이 편하게 썼던 말이, 아줌마, 아주머니였었는데 이제 그것도 아닌 듯합니다. 모든 것들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기 주머니에서 온 말이라고 믿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머니에는 왠지 포근한 기운이 담겨 있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고 싶은 이야기일 뿐 사실은 아닙니다.




¶ 직계가 아닌 방계를 나타내는 ´앚´이라는 호칭이 있다. 이게 아비와 어미 앞에 붙으면 같은 항렬의 방계 친족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앚+어미´에서 ´아자미´라는 단어가 나왔다. 정확히는 지읒 밑에 아래아자를 썼지만. 이와 같은 원리로 ´어미´ 대신 ´어머니´ 앞에 ´앚´이 붙어서 ´아주머니´의 원형이 된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건 19세기라고 한다. 이렇게 되어 ´어머니와 같은 항렬의 여성 친족- 이모 혹은 고모- ´를 뜻하는 호칭이었다가, 후에 친족 외에도 결혼한 여성을 뜻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 위키 백과 ´아줌마´ 참조




그럼에도 나는 주머니를 만지작거립니다. 사람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주머니, 생명의 시작과 끝이 머무는 곳, 포도주를 담는 부대를 떠올립니다. 땅은 씨앗들의 주머니입니다. 그 안에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남깁니다. 어머니는 주머니입니다. 그 안에서 내가 맺어졌습니다. 생명이 움트는 곳은 자궁, Womb입니다. 무덤 Tomb은 생명이 잠드는 주머니가 아니었습니까. 주머니에서 주머니로 우리는 이사 갑니다. 땅은 무덤들의 주머니가 되고 하늘은 영혼의 안식처가 됩니다. 우리는 포도주입니다. 땅을 적시고 땅을 흐르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세상은 우리를 담는 부대입니다. 신앙은 우리 안에서 숙성되는 포도주입니다. 안에 담긴 것들은 모두 포도주이며 밖에 담는 것들은 모두 주머니, 부대입니다. 나는 나의 주머니가 되고 나의 술이 됩니다. 술이면서 부대, 술과 부대가 하나입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피와 살, 그 둘이 의지하는 영혼은 누구의 입김입니까.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고 일본에 갔을 때, 엄마가 어머니가 주머니라는 것을 알고 - 일본어 후쿠로 ふくろ、袋는 주머니, 거기에 존칭의 お를 붙여 おふくろ라고 하면 어머니라는 뜻이 됩니다 - 안심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살 수 있겠다고 그때 비로소 마음을 먹었습니다. 캥거루의 주머니같이, 아델리 펭귄의 둥지같이 사람을 녹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눈보라 속에 나를 내어놓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이 그 말에 있었습니다. 후쿠로, 후쿠로, 세상이 주머니일 때 사람이 순해집니다. 주머니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를 붓습니다. 어느 부대에 콸콸 쏟고 싶습니다. 맛이 깊었으면 합니다.




그대의 좋은 날에 건배.





* 기우 杞憂 - 윤석렬 정부의 친親 일본 노선과 궤를 달리합니다. 그 나라의 말을 적고 문화를 들여다보는 일은 정치적이지 않습니다. 인간적이며 평화적인 공부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며 멀리 있는 타자 他者를 생각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지향합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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