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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7. 2023

기도 95-1

to 부정사

2023, 0117, 화요일



좀 늦었습니다.


어제보다 더 추워졌습니다. 앞으로 며칠 추울 거라고 그랬는데 잘 살피셨으면 합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 짧은 겨울 해가 아슴아슴 지고 있었습니다. 유리창 앞에 꽃들이 빛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작고 푸른 이파리에서 밝고 동실한 따뜻한 것이 하나씩 떠나가는 것이 눈에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혼합 가정법*이란 것을 떠들던 참이었습니다. 이것은 짬뽕이야, 짬뽕 가정법.




아이들에게 to 부정사를 알려줄 때는 ´슬픈 아이니까´ 잘 봐줘야 한다고 부탁합니다. 동사였지만 동사로 살지 못하는 아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했던 홍길동 같은 활빈당 무리, 하지만 그것 없이는 문장이 써지지 않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자존심을 지킨 아이! 그래서 꿈이 무한해진* 아이들, 멋지잖아.




가르치는 사람도 사람이라서 가끔 자기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거 보면 아마추어도 못 되는 것 같은데 이런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너네는 나랑 공부하면서 행복하냐? ´




주말에 공부하는 고등학생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안쓰러운 것이 감싸옵니다. 열심히 달리는 아이일수록 거기에 애틋한 것이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의심이 들고 괜스레 미안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쩐지 다들 짠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짜리가 is 하고 are를 부지런히 따지는 것을 보고 있어도 그렇고 고등학교 3학년이 콤마 하나를 갖고 고민하는 것도 눈물 맛이 돌 때가 있습니다. 짠한 소금기가 마음 끝에 어디서 돌돌 거슬러 올라옵니다. 저는 좀 흐지부지한 편입니다. 너무 열심히 하지는 마, 그런 말로 토닥거리는 것이 맞나 싶어서, 그래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바꿔 말하는 저는 비겁한 편에 속하든 겁이 많든 그럴 것입니다.




명사만을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형용사, 만인의 연인, 부사를 소개하면 특히 여중생들이 재미있어합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것은 형용사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부사에 대한 관심을 어쩌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구나, 사람이 그렇습니다.


´부사가 답이려거든 그 부사를 살짝 지워봐라, 그러고도 그 문장이 말이 되면 정말 부사가 답인 거다. ´


내 말이 공간을 지나가는 화살 같았습니다. 탁, 표적에 맞았던가. 바람이 밖에 나가고 없었습니다. 고요한 속에,


´부사는 완전 멋있는데요, 다 좋아하기만 하잖아요, 자기 것을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사라질 줄 알잖아요. ´




어느 여중생이 이렇게 말하면 예쁘지 않을까요. 나는 그 말에 고맙다고 속삭였습니다. 너는 좋은 눈을 가졌구나, 고맙다.



그래, 부사는 바람둥이가 아니라, 바람이다. 진짜 바람은 갖지 않는다. 자기마저도 없다. 그래서 바람이다.




고마운 것들이 하루에도 몇 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봅니다.


나는 귀를 가졌으면 합니다. 귀를 세 개쯤 갖고 살면 시끄러울까요, 고요할까요.


어쩌면 들어야 할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해서 더 시끄러운 줄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소리를 좋아합니다. 그 소리는 맑은 소리입니다. 이 말씀도 내내 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마르코 2:27





* 부정사 ㅡ 부정사를 infinitive라고 합니다. 여학생들에게 '인피니트' 그러면 와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돌 그룹 이름입니다. Infinite 그 뜻은  무한하다입니다. 부정사는 쓰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부정사 不定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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