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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8. 2023

기도 96-1

예쁘다

2023, 0118, 수요일



어제 보내드린 사진은 찍은 지 5분도 안 된 따끈따끈한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여학생인데 저도 놀랐습니다. 정확히는 반가웠던 거 같습니다. 채 열흘이 다 지나지 않은 사이입니다. 사실 첫날 아이를 보고 감 感이 멀게 느껴졌습니다. 말이 없고 눈도 볼 수 없었으며 대답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더블 에이형, AA 같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는데 많이 소극적이거나 중2 병이 아직도 진행 중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마음이란 곳은 열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멀뚱멀뚱 밖에서 서성거릴 것이 벌써부터 걱정되었습니다. 날도 추운데 이거 어떡하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잘 기다리는 편입니다. 아마 저는 그 유명한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제 아침에는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웃으니까 더 예쁘구나!"


우리 딸에게도 해본 적 없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표정이 없었거든요. 아이가 사무적이라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맞습니다, 거리감. 여태 거리감이란 것을 내가 상대에게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것을 역으로 받아 보니까 제법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끄덕거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같이 사는 사람도 그럴 수 있다.


같이 사는 사람한테 거리감을 느끼는 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겠구나.


부모한테, 배우자에게, 자식한테, 형제에게, 또 기타 등등.




아시다시피 저는 상상을 조금 할 줄 압니다. ´눈곱만치´


하느님은 햇볕 같으신 분이니까 차별이 없지만 나는 얼마나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가.


용서의 크기는 거리감에 비례해서 커지기도 하겠구나, 그래서 부처님은 멀리 있는 사람을 챙기라고 그러셨구나, 기타 등등.




어제 아침에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고개를 가로로 젓습니다.


"근데 오늘은 왜 웃어?"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자리에 앉습니다.


"이유도 없이 자꾸 웃으면 병원 가봐야 하는데."


아이도 웃고 저도 웃었습니다.


오늘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웃으면서 아이가 교실에 들어서는 것을 상상합니다.






그러니까, 어제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전날 배웠던 것을 어떻게 복습했던가 살펴보다가 서로 화기애애했던 거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경우에 이처럼 환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아실 겁니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한 것도 말랑말랑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사소하고 사소하고 사소한 이런 이야기가 ´꺼리´가 됩니다. 들려줄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포근했던가, 좋았던가 그랬으니까 ´기도´라는 말이 거기에 적혔습니다.


서로 경직되어 있으면 절대 그런 말이 나오지 못합니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기도다. ´


내가 적었는데 다른 사람이 적은 것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1000년 정도 지나서 그 아이의 노트가 어디 유물로 발견되면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주고받았구나, 이런 정서가 있었구나,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기도´는 뭐지? 그런 상상을 합니다.




예쁘다고 하면 웃습니다.


그 노래가 생각납니다.




김성호, 회상




좋은 하루 보내셨으면 합니다.





P.S -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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