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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처럼 Jan 19. 2023

기도 97-1

가난해서

2023, 0119, 목요일



저는 어제 이 대목에서 울컥했습니다. 바닷가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살다가 떠나는데 반짝이는구나. 지고 나서도 따뜻한 것이 빛이구나 싶었습니다. 다이아몬드보다 귀한 금빛 모래가 반짝거렸습니다. 모두에게 이 기사를 건네지는 않고 신자들에게만 우선 보냈습니다. 그 대목 잠시 소개합니다.




¶ 더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이 먹고살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 아니라 신부님 때문에 의사가 됐고, 신부님처럼 살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자들이 병원에서 진료하는 모습을 보니 먼저 ´어디가 아프세요?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환자 손부터 잡는 거예요. 가는 곳마다 손을 잡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 진료를 하기에,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자들이 ´이태석 신부님이 해오던 진료 방법입니다. ´라고 답하더군요. ´아이들이 신부님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구나. ´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뻐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 불교 신자가 본 예수 기사 가운데.




맥은 잡혀 봤어도 손은 내어준 적도 없고 잡혀 본 적은 더 없습니다. 어디가 불편하냐고 묻기만 해도, 병실에 한 번 더 찾아오기만 해도 환자들은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라고 입이 쉬지 않고 칭찬을 합니다. 상황이, 늘 여의치 못한 상황이 21세기를 이끌어 갑니다. 바빠서 우리는 그래본 적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가난해서´라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해서´ 자꾸 빵빵거리는 거야.


´가난하니까´ 먼저 연락을 못하고 시간을 끌지.


진짜 ´가난´ 때문에 싸우는 거야, 가난하다고 다 그러는 것은 아니거든.


나도 가난해서 불편한 것들이 있습니다. 불안한 것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없는 것도 가난입니다. 마음이 부족한 것도 가난이며, 착하지 못한 것도 가난한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을 하는 것도 가난이 끝을 보는 것입니다. 가난이 가난에게 덤터기를 씌우고 시비를 걸고 따집니다. 옥죄는 것입니다. 가난하니까 돈만 벌고 싶어 집니다. 가난하니까 공부만 합니다. 가난하니까 자기만 압니다. 가난한 것과 미안한 것을 혼동합니다. 가난하니까 계속 먹어도 배가 고픕니다. 가난한 사람은 무엇이든 다툽니다. ´자기 것´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빈자 貧者입니다. 미안한 사람은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자식들만 챙기는 부모는 가난한 부모입니다. 내 부모만 아는 사람은 결국 나만 아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법대로´ 하라면 소리칩니다. 똑똑해도 감동이 없습니다. 빛깔은 좋은데 향기가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다른 냄새가 납니다. 바람을 품어 본 적 없는 심장은 사는 일이 아픈 것인 줄 모릅니다. 그것이 가난입니다.




어제 읽은 기사의 한 토막을 더 소개하면서 맺겠습니다.




¶ 법복 입은 스님이든, 예복 입은 목사든, 사제복 입은 신부든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신부님의 삶을 보며 그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정진석 추기경이 감사패를 주신다고 해서 방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화 중에 제가 ´저는 톤즈 마을에서 예수를 보았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하잖아요? 불교 신자가 예수님을 보고 왔으니까요.




´당신이 본 예수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라고 물으시기에 ´제가 본 예수님은 대단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제 마음에 있는 분이었습니다. 톤즈 성당은 여기처럼 으리으리하지 않습니다. 허름한 성당에 벽은 포를 맞아서 구멍이 뚫렸는데, 사람들이 성당만 들어오면 얼굴이 밝아지는 걸 봤습니다. 그게 바로 예수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 불교 신자가 본 예수 中




사람이 우주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찰이며 교회이며 성당입니다. 어떤 이는 학교며 어떤 이는 병원, 식당, 버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구는 시, 누구는 노래, 누구는 방송, 그럴 것입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 신곡 지옥편


내 문 앞에는 무엇이라고 적어 놓을 것입니까.


우리가 다다를 그 집 앞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납니다. 거기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


주인아저씨가 무척 좋은 분이셨습니다. 우리를 보고 수고 많았다며 짐을 다 옮겨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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